대만의 중화상창을 아시나요? 추억 속에 빠져보는 『우밍이 -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1. 제목을 보고 느낀 점
심상치 않은 제목을 보고 바로 원제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원제는 책 앞 쪽에 잘 나와있으며 <天橋上的魔術師>이다. 목차를 미리 보니까 첫 번째 에피소드가 <육교 위의 마술사>였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선 4번째 에피소드인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가 이 책의 대표 제목이 되었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책의 앞부분을 보는 절차로 옮긴이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 다른 표현을 하자면 번역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허유영 번역가로 삼체 2권을 번역했다고 나와있다. 몇 달 전 데이나님이 추천해 주신 삼체, 그리고 넷플릭스에 방영되고 있는 삼체가 언급되어서 반가웠다. 폴 오스터의 책 <빵 굽는 타자기>와 로마인 이야기를 번역한 김석희 번역가가 생각이 났다. 번역의 중요성은 햄릿을 읽고 탐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 감성을 이어갈 수 있어 좋았다.
2. 독후감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소, 중화상창이라는 건물은 주상복합으로 현재 없어진 건물이다. 또 그 장소 속에서 줄곧 언급되는 인물은 마술사가 있었다. 소설 속 10가지 에피소드는 같은 시대에 이 두 가지 소재를 활용한 옴니버스식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에피소드의 1인칭 시점이 특징으로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효과를 준다. 그것으로 마치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옛 친구와 대화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찾는 것은 어쩌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도 있겠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살피는 노력은 의미가 없었다. 가장 큰 유익은 대만이라는 나라 속으로 빠져드는 그런 것 아닐까? 소설 속 인물들과 밀접하게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우리는 중화상창에 같이 있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그 속에 들어가서 소설에서 묘사하는 중화상창의 골목 하나하나를 탐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골목을 통해 육교를 지나갈 때 괴짜 같은 인물인 마술사를 만나면서 그 추억이 극대화된다. 우리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가짜 추억을 품게 된다.
또 하나, 나만의 중화상창을 무엇이며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중화상창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중화상창의 특징은 과거 랜드마크였고 현재는 없어진 건물이다. 그런 의미로써 나에게는 동네 오락실을 대입해보고 싶다. 이름은 다모아 게임센터로 동네에 유일한 오락실이었다. 그곳은 1층인데도 불구하고 음침했다. 그래서인지 가기만 하면 형들에게 삥 뜯기기 일쑤였고 양아치들의 소굴이었다. 하지만 좀비를 잡는 총 게임이라던지 철권, 메탈슬러그 같은 게임을 하려면 그곳을 꼭 가야 했다. 위협적이고 공포의 장소였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재밌어 보였다. 하지만 그곳은 몇 년 뒤 사장님이 오락실 안 쪽 작은 방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다 걸려서 오락실이 없어져버렸다. 그 비슷한 시기에 만화방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는 오락실도 만화방도 모르는 세대들이 있겠지만 함께 그 추억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익이 있다.
동네에서 나라로 확대시켜 보면 어떤 소재가 있을까? 남대문 화재사건이 있지만 복구가 되어 현재 존재하고 있다. 그럼 이건 아니고, 이렇게 생각해 하나둘씩 떠올려보면 우리나라에도 중화상창 같은 곳이 많았다. 특히 생각이 나는 것은 용산재개발 사건이다. 요즘 용산역을 가면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역사를 나와 도보로 나오면 고층 건물들이 압도하여 마치 목성공포증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용산역을 벗어나 삼각지역까지 걸어가면 옛날의 용산을 느낄 수 있다. 그 경험은 곧바로 맛볼 수 있는데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을 지나 횡단보도를 지나기만 하면 시간여행한 듯 옛것이 펼쳐진다.
밑 빠진 독에 물은 붓는 동안 깨달음을 주었다. 그 깨달음은 추억의 유용함이다. 소설 속 인물들도 다들 어렸을 적 중화상창과 마술사로 연결된다. 그러면서 공감대를 토대로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니까 추억은 어쩌면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다. 추억 속에 빠져 기쁨을 느낄 수도 슬픔을 느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 그것이 동력이 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추억은 슬픈 역사를 가진 민족에게는 앞으로 의기투합해서 살아갈 의지력을 불러주며 아픈 과거를 가진 개인에게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무궁무진함을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이빙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추억은 현재를 살아가 나아가는 여러 가지 동력원 중 하나인 셈이다. 대만의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좋았지만 추억 속에 잠겨 친구에게 전화하고 오락실 이름이 뭐냐고 대화했던 그 즐거움도 좋았다. 잘 지내냐는 말 보다 대뜸 오락실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는 전화가 미안하긴 하지만 목소리라도 들어서 좋았다.
3. 영화감상 <허우 샤오시엔- 연연풍진>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 영화가 언급이 된다. 또한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글귀들이 여럿 보인다. 아마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중화상창이 존재했으며 궁금해서 확인차 보았던 영화에서는 중화상창에 진짜 오토바이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나왔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을 수도 있고 가상의 인물일 수도 있겠지만 터무니 없는 인물들을 설정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개의 에피소드에 신뢰감을 더해 그 시대의 대만의 문화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대만의 대한 감상은 TSMC가 있는 나라 중국과는 척지고 있는 나라 만두가 맛있나라 그리고 일부 대만영화와 드라마가 재밌는 나라로 기억하고 있지만 좀 더 그 느낌이 다채로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