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문화지체현상, 인문학이 멸시 받는 시기를 담아낸 『쥘 베른 - 20세기 파리』
1. 제목을 보고 든 생각
파리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사실 첫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서유럽은 되도록이면 배제했다. 왜냐면 뻔하디 뻔한 서유럽의 풍경을 동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보다 다르고 싶은 삐뚤어진 욕심으로 서유럽이 아닌 중부유럽을 선택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보지 않은 자의 자유로운 편견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어서 다행일까?
파리하면 떠오르는 것은 패션과 잦은 시위이다. 확장시켜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프랑스 대혁명이다. 이 정도의 인식뿐이었다. 이런 프랑스와 파리에 대한 기본 이미지로 20세기 파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저 그냥 격변의 시기에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설명할 것 같다.
2. 독후감
나는 회사에서 설비 진단 업무를 맡고 있다. 추정컨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산학협력성 업무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학계에서 논문이 발표되어 출간되면 산업에서 적용하여 도입을 한다. 지금 맡고 있는 나의 일 또한 국제표준이나 논문을 찾아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작년 H대학교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출장으로 참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그 세미나에 내가 꼭 뵙고 싶었던 교수님이 오신다고 해서 더 설레었다. 그 교수님은 M대학교 L교수님이시고 내가 하는 일을 찾다 보면 논문 저자로 많이 등장하는 분이었다. 마치 연예인 또는 아이돌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곧 수직낙하 하듯 고꾸라지고 실망을 품게 된다.
학회에서 그리고 세미나에서 교수님의 이미지는 학계에서의 권위자로 그 아우라는 대단했다. 세미나 첫날, 그날 저녁식사 초대를 받게 되어 교수님과 대적을 했었다. 그때 느낀 교수님의 이미지가 실망이었다.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말하는 소위 이른바 개저씨였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독후감과는 상관없고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생략하겠다. 그리고 세미나 때문에 어제 곧 장 프랑스에서 넘어오셨다는 교수님은 유럽인들의 근무태도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용은 근무시간이 짧아서 더 발전할 것도 못하고 참 미련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딱 듣자마자 교수님의 인문학적 소양이 참으로 부족하구나 느꼈다. 물론 교수님이 학회와 기업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여 존경할 따름이지만 어떻게 해서 유럽인들의 근무형태가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보려는 태도보다 기회를 차버린다며 아쉽다는 표현은 기성세대들의 일중독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정도 높은 자리에 올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도 싶지만 오히려 높은 자리에 설 수록 그런 소양을 갖춰야 하는 거 아닐까? 전태일 열사가 보면 통곡할 따름이다.
문과 출신인 나는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공학을 전공했다. 수능을 못 봤다. 시험 망쳤다는 표현은 이제는 부끄럽다. 그냥 공부를 안 한 것일 뿐이었다. 지방사립대 사회복지학과나 그와 비슷한 입결을 가진 학과를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나는 내 인생을 포기하고 던지듯 아버지말씀에 순종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몇 년이 흐르자 판도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문과친구들은 취업에 허덕였다. 공무원 준비한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친한친구를 통해 접해들은 고등학교 동창들의 이야기는 이처럼 단순했다. 진짜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였다. 아버지의 강권은 하나의 전략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나는 공대에 잘 적응했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으로 나의 인생은 순탄하게 흘러갔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여전히 거실 한 면 전체가 책이 가득한 이유를. 당신의 과오를 자식에게 이어지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까? 라틴어 시 부문 대상을 받은 미셸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될까? 웃프지만 애매모호한 성적이 한 몫했다.
독서모임을 처음 같이한 마스쿤님과 이런 뉘앙스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독서는 여유로운 자의 축복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속으로 그 이야기를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교양 있고 여유로운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서 여유롭고 교양이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읽거나 독서를 하는 애독가시라면 항상 고군분투하며 책을 읽는다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논한 것은 독서와 독서모임에 점점 사람들이 찾지 않은 이유를 고민하다가 얻은 결과였다. 독서는 늘 여러 가지 이유로 또는 생업에 뒷전으로 쉽게 전락해 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책을 읽어 오지 않는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한 때 이 이야기를 많이 나눈 적이 있다. 생업을 제쳐두고 인문학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미셸이 사랑하는 뤼시를 비참 속에 두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생산해 낸 인문학적 가치가 전인류에게 세대를 넘나들며 유익을 주는 것에 존경심과 감사함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미치도록 힘들어했던 반 고흐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준다. 반 고흐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인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그의 예술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있다. 나는 미셸이 집필한 시집 <희망>이 그런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우리는 미셸이 미련해 보이겠지만 두 번이나 퇴사한 그의 천성은 어떻게 고칠 수는 없고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을 세상에 나오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뿐이다. 이 사회는 이런 식으로 미셸에게 보답해 줄 수밖에 없겠다.
2019년 야수파 걸작전에서 김찬용 전시해설가의 도슨트가 기억이 난다. 그는 1905년 가을살롱을 강조했는데 그 내용에는 거트루드 스타인 여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미국의 수집가였는데 그녀가 없었으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못 봤을 수도 있다고 했다. 어떤 재력가의 눈썰미가 하나의 예술의 장르를 살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이런 사실을 보았을 때 돈과 예술은 떼 놓을 수 없으며 인문학과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반추해 볼 수 있다. 사실 책 본문에서도 삼촌 위그냉과 직장 사수이자 피아니스트인 캥소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미셸에게 지주 그러니까 자본가가 되는 것을 추천해 준다. 그들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창작활동은 돈벌이에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보면 후원받아가며 작곡하는 여러 예술가들이 있었고 그렇게 종신연금에 집착하는 이유도 돈에 있었다.
미셸의 문학을 인문학으로 확대해서 보는 것이 비약일 수 있겠지만 아주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를 너그럽게 봐주신다면 인문학 또는 예술의 길에 세 가지 태도를 취하는 인물을 구분할 수 있다. 은둔자 위그냉, 탈출자 캥소나 그리고 도전자였던 미셸.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위그냉일 것이고 캥소나는 김환기, 미셸은 이중섭으로 치환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파리>가 가지는 독특한 설정으로 <20세기 파리>를 지금 읽고 있는 독자에게 좀 더 미셸에 감정이입을 하게 도와준다. 인문학 서적을 읽지 않는 사람이 다수인 세계를 바라보는 책을 읽은 사람인 구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액자 속을 바라보는 우리는 <20세기 파리>와 지금은 과연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세기 파리>에는 공학적 지식이 세상을 압도하지만 지금은 그 판세가 확장되어 과학과 돈이 최고인 시대가 와버렸다. 서점을 살펴보고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20세기 파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자꾸 인문학이 중요하냐고 반문한다면 슬프게도 이 책의 마지막은 미셸이 추운 겨울날 눈 위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중요한 걸 아는 사람만 중요하다고 외치는 격이 되는 그렇지만 인류사회에서는 외로운 외침이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이 인문학이지 않을까 싶다. 그저 외치는 자가 많아지길 바라며 나 또한 미셸 곁에 머물며 전선 앞 선봉대에서 계속 외치겠다. "익명 독서모임 멤버를 모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