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1. 책을 읽기 전 제목에 대한 감상


지구의 끝이라는 표현을 처음에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지켜보고 생각해보면 지구의 끝이라는 게 과연 옳은 표현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구는 구에 가까운 타원인데 어떻게 끝이 있을 수 있을까? 지구 평탄설 그런 이야기는 절대 아닐 테니. 그래서 여기서 끝은 물리적인 표현보다 관용적 표현이 더 맞겠다 싶다. 보통 연인들이 싸울 때 “우리 이제 끝이야!”라고 말하면서 관계의 종결을 짓는 것처럼. 그렇게 본다면 지구의 종말은 온실이라는 뜻 일까? 종말이 온실이라면 그 온실은 긍정적인 단어일까? 부정적인 단어일까? 아무튼 여러모로 많은 질문을 하게 하는 제목이었다.


2. 독후감


화려한 책 표지를 감탄하고 책을 펴고 읽었을 때 아마라와 나오미의 이야기가 나오는 프롤로그가 쉽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프롤로그라 짧은 분량 덕분에 이해안되고 재미없는 구간을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 또다시 감탄이 든 것은 잘 짜인 계획처럼 목차를 구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프롤로그 뒤에 모스바나 그리고 프림 빌리지 마지막으로 지구 끝의 온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헤아리면 모든 시점이 미래이지만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한다. 그것이 책에서는 더스트 폴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결국 마지막 챕터인 지구 끝의 온실에서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며 이야기를 종결시켜주는데 마치 잘 짜인 코스요리처럼 든든했다. 책 읽는 중에는 그런 점은 느끼지 못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김초엽 작가가 제공해주는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 눈여겨 봐야할 포인트로 세 가지를 뽑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지구의 생명체들을 다 멸종시켜버리는 더스트 폴과 구원자인 모스바나. 두 번째로는 지수와 레이첼의 관계에서 알 수 있었던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문제. 세 번째는 과거사를 바라보는 현재. 책의 맨 뒤에 위치한 작가의 말에서 김초엽 작가가 말했듯이 여러 대상들을 검토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더스트가 아니라 좀비였을 수도 있고 식물인 모스바나가 아니라 백신이 구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거 완전 좀비 영화랑 플롯이 비슷한데 라고 느끼며 미드 <워킹데드>가 생각나기도 했다. <워킹데드> 같은 경우는 1,2기 정도만 좀비 vs생존자 구도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다가 그 뒤부터는 좀비는 안중에도 없고 생존자 vs생존자의 구도에 초점을 두고 시즌을 나가고 있었다. 좀비 드라마에서 좀비의 비중이 사라졌다 느껴졌을 때 그만 보기 시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재는 충분히 흥미로왔다. 좀비보다는 현실성 있는 미래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미세먼지보다는 황사라는 단어가 익숙했지만 요즘은 황사보다는 미세먼지가 익숙하다. 앞으로 계속 환경에 무심했다간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날도 찾아올 것이다. 그 세계관에서 타개책으로 삼은 것은 식물, 모스바나였다. 원예학을 전공한 김초엽 작가의 아버지 덕분이라 고백했지만 잘 선택한 것 같다. 결국 더스트 폴이 찾아온 것은 인간만의 욕심일 것이고 이를 해결하는 건 자연이라고 풀어낸 것이니 말이다. 영화 <바이센티얼 맨>과 구병모 작가의 <심장의 수놓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둘의 공통점은 오류 가득한 인공지능 로봇이 진짜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레이첼도 신체의 반 이상이 기계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엔지니어인 지수를 만나서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뇌 또한 메모리칩으로 대체된다. 이때 퉁명스럽고 까탈스러운 레이첼의 성격을 온순하게 하기 위해서 지수는 스위치를 올려 인위로 조작시켰다. 지수의 이 행동이 훗날 이 둘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과연 레이첼의 자유의지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메모리칩으로 대체되어도 그전과 바를 바 없는 레이첼을 뭐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기계일까 사람일까? 뇌까지 대체된 레이첼이 100% 기계화된다면 레이첼은 사람일까? 갑자기 조니댑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트랜 센더스>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그는 그의 뇌를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마치 신이 되었다. 그를 더 이상 인간으로 보기엔 혼란스러운 점이 많다. 아마 앞으로 훗날 레이첼과 같이 인간의 몸을 보조해주는 기계가 나올 것이다. 책에서 설정하기로는 생체 수치가 30% 이하일 경우에만 엔지니어에게 수리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위와 같은 경우를 어떻게 바라보고 합의할지 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기억남았던 것은 더스트 폴 이후의 세대들이 그 이전에 대한 세대들에 대한 인식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 라고 하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 것처럼 어느 시대 때나 세대갈등은 있어왔고 있다. 하지만 책에서 표현하는 이후 세대들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세대갈등과는 결이 다르다. 더스트 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삼강오륜 따위는 필요 없는 원초적인 본능으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결국 악질이고 강하고 생활력이 뛰어난 자들이 살아남았다. 이제 그들이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현재 세대들과 사회가 그들의 더스트 폴의 생존자라 떠받들어 주지만 더불어 야만적이라 욕도 서슴지 않는다. 더스트 폴 세대에 대한 태도가 표리부동인 것이다. 진짜 존경하는 것인지 존경하는 척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은 맞다. 사실 이 이야기를 보고 나와는 같을 거라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나 또한 별반 다를 것 없을 것 같다. 비단 할아버지 세대만 보더라도 당장 먹고사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당연하게 공동체주의였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제1 목표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먹는 문제인 육체적 건강보다는 정신적 건강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고 공동체보다는 개인 존중, 개인주의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가 과연 정말로 꼰대라고 폄훼할 수 있을까? 비록 탑골공원에 못된 할아버지 일지라도 말이다. 어찌 보면 현재 밥걱정을 안 하게 해 준 장본인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올해 한국SF소설을 많이 읽어 보았다. 그리고 느낀 것은 요즘 책들은 스타워즈 같은 공상과학이 아니라 가깝고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미래를 그려낸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스타워즈 팬들에게 미안하다. 철학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곧 앞으로 다가올 것 같은 미래를 간접 경험함으로써 오히려 현재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책에서 앞서 다뤄준 갈등들을 가정해서 이야기해주었으니 이 책을 읽은 우리는 더 낫은 미래를 설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p.s 숙제라고 임하고 글 쓰다보니 엉망입니다. 한 번도 수정을 거치지 않고 탈고합니다. 송구합니다.

3. 인상깊은 구절


레베카는 여자이름 같은데 책 속 표현에 그나 그녀라는 표현이 딱이 없어서 의도적으로 중성적으로 표현한 건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레베카는 왜 여자 이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지수 또한 여자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고쳐야 하는 편견일지 생각해보니 아영도 여자인 것 같은데 여자라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참고로 지수라는 남자 동창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지수는 여자 이름 같아 보입니다. 물론 여기서 여자 남자가 뭐가 중요하겠냐만은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