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리사손의 임포스터(가면을 쓴 부모가 가면을 쓴 아이를 만든다)를 읽고

1. 읽기 전 제목에 대한 생각

20년에 유행했었던 게임 어몽어스가 생각이 났다. 임포스터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이 게임을 통해서였다. 이 게임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유튜버와 스트리머들이 플레이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단순히 임포스터라는 단어를 임무 수행자라는 의미를 가졌을 거라 생각했다. 글쓰기를 하기 전 사전에 그 의미를 찾아보았는데 임포스터는 사기꾼이었다.

2-1. 줄거리


리사 손의 임포스터는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3개 챕터는 가면을 벗기 위한 메타인지 사고법을 사례 중심으로 소개한다. <행복에 도달하는 길은 울퉁불퉁하다>, <어느 아이든 모르는 시기를 거친다>, <진정한 겸손은 도움을 청할 줄 아는 것> 이렇게 3개다. 각 챕터마다 줄거리 요약이 있어서 용어가 어려워서 쉽게 지나치거나 망각곡선으로 인해 까먹게 되는 일을 방지해준다. 마지막 4번째 챕터는 <부모와 아이 모두를 위한 들키기 학습>이다. 앞서 3개의 챕터에서는 임포스터에 대해서 이야기 설명했다. 그리고 그 가면을 벗는 방법을 제시했다. 여러 가지 연구자료를 통해 그 방법은 신빙성이 있어 보였고 실제 리사 손이 경험함으로써 신뢰가 간다. 설명과 방법을 토대로 주제를 교육 및 육아로 방점을 찍었다. 물론 형식은 변하지 않았고 앞선 챕터에서 은연중에 자식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독자 즉 부모들에게 응원을 전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마무리한다.

2-2. 독후감

책을 읽는 도중 연신 눈물을 감추는데 힘이 들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임포스터라 고백하며 간증의 글을 담백하게 전달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시기와 현재 감정상태가 피폐한 상태와 겹쳐 페이지를 넘기는 게 나에게 하나의 고문과 같았다. 독서모임을 빌어서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인 글쓰기로 승화시켜보자 한다.

나의 어렸을 때의 기억 중 나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엄마에게 눈물 감추었던 것과 두 번째는 누가 봐도 큰 사고였는데 괜찮은 척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봄방학 그러니까 2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에 우리 가족은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이사를 많이 하고 다녔다. 많은 기억이 없지만 부모님의 회고로 그 기억들을 어느 정도 보정하고 있다. 친가에 잠시 살았던 때에 부모님이 많은 다툼을 하셨고 그것이 나의 감정상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나의 슬픔은 용납되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불행한데 나의 눈물로 그 불행이 더해지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홀로 눈물이 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숨기지 못할 때면 일부러 하품을 해서 눈물을 숨기곤 했다. 친가에 더불어서 외가에 잠시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살았던 동네는 산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서 경사진 길이 많았다. 대문을 나서면 바로 내리막길이 있고 그 길의 끝에는 1미터가 좀 넘는 낭떠러지가 있다. 그 낭떠러지 밑에는 또랑과 논이 있다. 사촌누나와 놀다가 사촌누나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동경해 나 또한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멈출주를 모르고 그대로 활공했다. 자전거와 나는 논에 처박혔고 쌍코피가 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는 이렇게 회고했다. "녀석이 울지도 않고 어휴 시원하다고 하네"라고 했다. 방에서 보살핌을 받았지만 나에게 관심이 쏟아진 게 많이 부담스러웠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완벽주의, 가면과 메타인지이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단어는 사후과잉확신편향과 과잉교정효과였다. 영문으로는 Hindsight Bias인 사후과잉확신편향은 본인이 과거에 내린 판단을 이것이 직전에 내린 판단일지라도 그것이 불확실하거나 정답이 아닐 경우에 그것을 망각하고 마치 처음부터 정답을 유념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문으로 Hypercorretion Effect인 과잉교정효과는 오답을 확신하고 있을 때 정답을 알게 되면 오히려 자신의 실수를 더 잘 교정한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우물쭈물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거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박쥐처럼 중간을 택한다면 오답을 교정할 수는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 시험기간이 싫었다. 더 정확히는 시험 점수를 확인하는 시간이 싫었다. 시험기간이 끝나고 찾아오는 수업시간은 으레 문제를 복기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본인의 시험 점수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그 시간은 수업시간의 성격보다는 학생들끼리 점수를 공유하는 시간이 되어버리곤 했다. 본인의 점수를 확인하게 되면서 운 좋게 다른 친구들의 점수들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그 시간이 정말 싫었다. 나는 줄곧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시험 왜 이렇게 망했어? 괜찮아?" 그러면 나는 항상 " 이번엔 좀 못 봤네" 혹은 "이번에 공부를 좀 못했어"라고 일축하곤 했다. 공부를 그만큼 안 했으니 70점이 나온 것인데 항상 친구들은 나를 90점짜리로 평가했다. 그 평가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나는 수업시간에 집중도나 수업 참여도가 높은 학생이었고 세상에 관심이 많아서 잡다한 지식들이 많았다. 그리고 책을 또래 친구들보다 좋아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나를 우등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나의 본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런 성격은 군대에서 폭발했고 좋은 친구와 나의 뛰어난 성찰력으로 인해 한 번 극복했다. 내가 보았던 모의고사 중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성적을 수능에서 보았다. 모든 등급이 5등급이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고등학교 3년 동안 고3 때 공부를 가장 안 했다. 문과였던 나는 부모님의 권유로 전문대 진학을 했다. 나는 나의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내가 진학한 학교는 입학과 동시에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어서 나 또한 휴학을 했다. 군입대를 여러 번 낙방하고 11월에 입대를 했지만 그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아빠와 같이 일을 하고 돈 벌며 유럽과 일본 여행을 갔다. 친구들은 대학생활을 할 때 나는 해외여행을 갔다는 것에 자아도취하며 우월감을 느낀 나는 그대로 쭉 나를 숨기며 도피해갔다. 군대에서 자기소개를 최소한으로 했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명문대생이라 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역할 즘 현실로 돌아가야 할 처지를 깨닫고는 나의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언제나 내가 속한 곳 어디든 다 멍청이들이라 생각한다. 이 직장에서도 나는 XX섹션에 속해 있지만 모두들 다 멍청이고 나만 똑똑해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도 마찬가지였고 대학생활에서는 더욱 그랬다. 극단적 성격을 가졌던 나는 전문대는 다 소위 이른바 양아치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냈던 도시에는 대규모 산업단지도 없었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공무원이나 연구원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전문대에 대한 레퍼런스는 전무했고 학교 선생님 또한 그랬다. 그런 인식으로 전문대를 진학했을 때 나 또한 그들과 같지만 다르다고 스스로 평가하며 다 머저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와 설명을 간단하게 학점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첫 학기에 4.08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었지만 3.33으로 졸업했다. 물론 조기 취업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라포 형성이 아주 잘된 소수의 친구들과 스터디를 했고 그 스터디에서도 도움을 받는 위치가 아닌 도움을 주는 위치가 되고자 했다. 몰래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명석한 척을 했고 그렇게 해서 쉽게 도움을 주는 위치를 선점했다. 그렇지만 점점 교과가 버거워질 때쯤에는 이전의 방식대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었다. 첫 학기에 4.08을 맞은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질문하기가 싫었다. 똑똑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바로 다음 학기부터 성적은 곤두 박질 치기 시작했고 올바르지 않게 나의 학점은 비선형적으로 떨어졌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과장이 허락된다면 내가 속한 XX섹션은 다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들 전공을 겉핧기 식으로 알고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멍청이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싶다고 생각해서 입사한 지 이제 1년이 되었는데 어느 누구와 상의도 하지 않고 사이버대학교를 진학했다. 시험기간이 찾아오는 날일 때면 다른 핑계 대고 야근이나 잔업을 빼거나 회식을 빼는 게 참 곤욕이었다. 사이버대학교 다닌다는 것은 철저히 비밀리로 부쳤다. 왜냐면 직장동료들을 다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나의 정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명석한 이미지를 얻고 싶어서 기사 자격증을 단 번에 따고 싶었다. 결과는 실기만 지금 5수째이다. 재수에서부터 5수까지 이르는 지금까지 내가 얻고 싶은 이미지와 그들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의 괴리감이 커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실제로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멍청이로 보지 않을까 두려웠다. 결국에 불합격 발표날에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받는 날에 용기 내서 그나마 친한 과장님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조금이나마 심리적으로 평안해졌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주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예배를 드린다. 예배드리는 일요일 주일이 기쁨으로 가득 차야 마땅한데 나는 그 주일이 가장 바쁘고 힘들다. 첫 시작은 그렇다. 자기 결정권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거절을 못 했다. 아침을 어떤 형태로 먹던지 간에 우리 목사님은 아침식사를 권하신다. 가끔 집밥이 그리울 때면 사택에서 사모님이 차려주신 아침밥이 좋다. 이곳 교회로 막 옮겼을 때 교회에서 먹을 작정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서 가져갔다. 예배당에서 먹기에는 좀 그래서 목사님이 계신 목양실에서 먹었다. 목사님 눈앞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는데도 나는 목사님의 아침식사 권유를 받게 되었다. 한 번의 부드러운 거절에도 목사님은 재차 권유하셨고 나는 그 권유에 이기지 못해 억지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20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식사의 잔반들은 다 나의 차지였다. 예를 들어서 만두가 하나 남거나 맛있는 메인 요리가 남을 때면 잔반 처리는 나의 몫이고 배부르다는 나의 표현은 쉽게 묵살되었다. 항상 스트레스받았지만 맛있는 거 먹었으니까 그리고 어른들의 하나의 사랑 표현이시겠거늘 이라고 생각하고 마무리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목사님의 아침식사 권유하는 시간대는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을 피해서 교회를 가면 아침식사를 먹지 않아도 되며 목사님의 사랑 담긴 핀잔을 들을 필요도 없다. 그렇게 나는 교회 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만 갔다. 최근에는 11시에 딱 맞춰 오는 집사님들이 매우 부럽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내 스스로의 줄다리기는 교회를 나서는 오후 5시까지 이어져갔고 출근하는 평일이 더 평안하다고 느낄 만큼 주일은 내게 고된 하루였다. 어느날은 뭘 해보지도 않았지만 아무것도 해볼수없다고 생각한 날이면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들리지가 않았다. 이 이야기를 가장 신뢰하는 친구에게 했을 때 본인이 있었던 이야기와 거절했던 간증이야기를 해주면서 나 또한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었다. 착한아이컴플렉스, 굳이 나를 먼저 챙기지 않고 착한 아이인 척 할 필요없다. 성경에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찌 이웃을 사랑할까.

이 책에 표지에서도 에필로그에서도 나타내듯이 자식을 양육하는 부모님들을 위한 책이다. 독자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적정한 독자가 있음은 틀림없다. 자식을 양육하는 데 있어서 본인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가 생각한다. 작가인 리사 손 또한 본인의 스토리를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이야기해주었다. 자녀의 교육법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가면을 먼저 마주하게 함으로써 본인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하게끔 유도해주었고 혹여나 그것이 자녀에게 똑같이 답습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또한 본인의 경험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리사 손이 지적한 것처럼 서양인 보다 동양인이 임포스터 기질이 더 띈다. 나 또한 한국인으로써 동양인의 범주에 들어가 있으니 그 기질이 어디 가지는 않을 터이다. 나도 이 거지 같은 성격을 내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욕구는 항상 변화를 요구한다. 그것의 수단이 작가가 강조한 메타인지인것이다. 외면하지 말고 본연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자. 나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들 딸들은 가면 쓰는 행위로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소망이 부디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3. 인상 깊은 구절


자아고갈 (Ego Depletion)이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자제력이 바닥이 나는 상황을 의미하고 척할 때 쓰는에너지가 유한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혼자 다 책임지는 것이 착한 행동일까?>라는 질문도 뇌리에 깊게 박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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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독서모임 준비

1) 리사손, 메타인지 트렌드 분석

표1, 대한민국에서의 리사손과 메타인지의 관심
표2, 미국에서 리사손과 메타인지의 관심

표 1은 대한민국에서 표 2는 미국에서 검색량을 상대적으로 나타낸다. 표 1에서 볼 수 있는 는 것은 리사손의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대한민국 사람들은 메타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면에 표 2를 보면 미국에서는 그다지 메타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동양인들과 서양인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양인들에게는 메타인지는 이미 탑재되어있는 기본값일 것이다. 그러니 알고 싶지 않을 것이고 검색도 하지 않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임포스터의 출간은 22년 1월이다. 그리고 리사손의 첫 출간작인 메타인지 학습법은 19년 6월이다. 리사손의 메타인지 학습법인 출간되었을 때 표 2에서 보았을 때 검색량이 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표 1에서 19년 6월에 값은 0에 수렴한다.

그러면 공통적으로 높게 솓아 있는 표 1에서 20년 3월과 표 2에서 20년 7월은 어떤 이유일까? 표 1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유튜브의 리사손을 검색하고 최대 조회수 영상을 보면 세바시 강연이 나온다. 그 강연은 20년 7월에 업로드된 1224회 차이다. 뉴스워커의 신대성 기자의 글을 따르면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온다. 점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다가 첫 출간작이 베스트셀러 5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검색량이 늘어난 것 같다. 그럼 표 2는 어떤 이유일까? 그 이유는 어이없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딸이 있는데 그녀의 이름은 리사 마리 프레슬리이다. 그의 아들이 있는데 그는 벤자민 키오이다. 벤자민 키오가 20년 7월에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래서 검색량이 늘어난 것이고 검색엔진에서 Lisa 와 Son(벤자민 키오를 의미)으로 해서 집계가 된 것 같다. 결국에는 표 2에서 리사손의 검색량은 전체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표 1에서 22년 2월에 검색량이 많아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임포스터의 출간과 다시 한번 세바시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리사손을 검색하면 3번째로 많은 영상이 그 영상이다. 나머지 45분이라는 코너에 ep.27에 나온다. 업로드가 22.1.27일에 되었고 책 출간도 22.1.5에 되었으므로 다음 달에 검색량이 많아진 것은 아마 여러 가지의 홍보가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엉성하지만 트랜드를 분석해보고자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왜 어떻게 해서 메타인지와 리사손이 나에게 노출이 되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리사손이 대한민국에서 메타인지를 알린 선구자였을까? 그녀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리사손의 임포스터를 읽기 전에 메타인지라는 단어를 익히 알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적어도 5년은 넘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기억이 어렴풋했기 때문에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결론은 대한민국에서 꾸준히 메타인지는 검색되어 왔고 특별히 리사손이 방송이나 책을 통해서 메타인지가 알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속단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메타인지가 꼭 동양에서만 인기 검색어는 아니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영문 검색어라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EBS 부모 특강 ‘0.1%의 비밀: 메타인지’ 방송을 계기로 주목을 받은 심리학 교수 리사 손의 <메타인지 학습법>은 여섯 계단 상승한 5위다. 출처 : 뉴스워커(http://www.newsworker.co.kr)

2) 리사손, 그녀는 누구인가?

https://barnard.edu/profiles/lisa-son


그녀는 미국 뉴욕 바너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이다. 대학 홈페이지에 소개된 그녀의 소개글에 보면 그녀는 인지심리학과 학습과 기억을 연구했다고 한다. 대표 논문을 살펴 보면 메타인지를 연구한 것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