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21년02월 06일에 작성하고 독서모임에서 나눈 독후감입니다.]
[이 독후감은 2020 제 1회 ㄱㅇ독서모임 문집에 실었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발췌된 부분을 삭제하거나 일부 수정했습니다.]
1. 제목을 보고 읽기 전 감상
<오래 준비해온 대답>, <대답>을 수식해주는 <오래 준비해온>은 그 대답을 특별하게 해준다. 어떤 대답이길래 오래 준비했을까? 나에게 누군가가 김밥천국과 같은 메뉴가 많은 식당에서 메뉴를 시키면 무엇을 시켜 먹나요? 라는 질문을 하면 나는 항상 준비된 정해진 답변을 한다. "몇 분 이상 고민하게 되면 그냥 제육덮밥 시켜요" 이와 다르게 미리 준비하지 않을 땐 답변을 하기에 망설여졌다. 줄곧 이때까지 식당에서 무심하게 주문하여 먹었고 그랬기에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나에 대해서 무심했기 때문에 나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 쉽게 당황해했다. 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려 하는 것 보다 나에게 무심한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예상질문의 답변을 만들어 냈다. 최애 메뉴가 제육덮밥이 된 것 처럼, 나의 대답 또한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김영하는 작가는 무엇 때문에 오래 준비했을까?
2.독후감
기행문의 3요소로는 여정,견문 그리고 감상이있다.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도 마찬가지고 기행문이고 3요소가 잘 지켜져있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여정에 있었다. 그가 찍은 사진은 책에 많이 담겨있지만 지도가 없었다. 그가 쓴 글을 읽어도 어느 정도 시칠리아에 대한 지리적 특징을 맛 볼 수 있지만 지리에 어둡거나 길치인 사람들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았을 거다. 성경의 무대는 중동지역으로 부터 시작이 된다. 대부분의 성경 맨뒷장에는 그 지역의 지도가 나오고 좀 친절한 성경에는 각 장마다 필요한 부분에 조그맣게 지도가 함께 나와있다. 성경에도 지도가 첨부가 되어있는데 어떻게 김영하 작가의 시칠리아 기행문을 잘 읽을 수 있을까?
지도가 없는 기행문, 거꾸로 생각하보면 그의 책에는 여정에서 주는 큰 메시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작가가 아니다. 그리고 <오래 준비해온 대답> 또한 시칠리아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비교적 친절하지 않게 비중을 줄인 여정에 주목하지 말고 감상에 집중해달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봤다.
그 동안 가고 싶은 곳이 있었냐는 방송PD의 말에 김작가는 마치 준비해온 대답 처럼 곧 장 "시칠리아요"라고 대답했다.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 대한 시원한 설명이 없어서 답답했다 하지만 오래 준비해온 대답 같다고 했지 오래 준비했다는 말이 아니였구나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오래 준비하면 어떻고 즉흥적으로대답하면 어떤가. 그렇다면 여행지가 시칠리아가 아니고 러시아의 시베리아나 일본의 시즈오카여도 상관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김작가가 시칠리아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1장으로 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1장에서 본 김작가는 매우 바쁜 삶을 살았다. 쉴 틈 없이 계속 달려왔다. 하나 둘 씩 그가 맡은 일을 그만 두게 되면서 그에게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김작가는 시칠리아를 떠나게 되었다. 운전 할 때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타게 되면 주변에 있는 풍경들을 볼 수 있다. 만약 그곳에 유채꽃이 있었다면 유채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주변에 노란색이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고속으로 달리는 차 속에서 주변은 보기 힘들다. 그렇게 김작가도 고속도로 같은 삶 속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국도로 들어왔다.
영어에는 <Gap Year>라는 표현이 있다. 자세한 설명은 개인적으로 찾아 보길 바란다. 내게도 갭이어 기간이 있었다. 군대가기 전까지의 시간들이 그러했다. 대입을 실패하고 전문대로 진학한 그리고 공부하지 않고 못했던 내자신을 받아 들이기 전에 두 번의 일본여행과 3주 좀 넘는 동유럽여행을 떠났다. 친구들은 새내기로 지내고 있을 시절, 나는 노가다 현장과 해외에 나돌아 다녔다. 흔히 좋은 대학에 가지 못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는 해외여행으로 우월함을 채우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 보다 배낭여행으로 체득하는 경험이 더 값진 거라 생각하고 오만함으로 가득찼다. 또래 친구들이 열등해보였다. 하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현실(전문대 복학)로 돌아가려 할 때 괴리감으로 힘들어 했다. 선택은 두가지 였다. 재수를 하거나 복학을 하거나. 재수 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복학을 선택했다. 복학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대입 실패의 요인이 내게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똑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나서 부터 내게 다가오는 복학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외여행에 대한 허상이 조금씩 벗겨져 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때까지 일본(북해도, 관서지방), 동유럽, 호주, 베트남을 가봤다. 호주는 국비지원 받아서 5주짜리 어학연수였고 그외는 모두 배낭여행이였다. 당연히 또래 보다 많은 경험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친구들이 대학교 다닐 때 혹은 직장을 다닐때 나는 그 시간에 여행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대단한 경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같은 시간에 각자 다른 것을 했을 뿐이다.
김영하 작가의 시칠리아에 대한 감상은 내게 왜곡된 여행에 대한 생각을 정결하게 해주었다. 그의 책 후반부에서 김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내게 각인 된 것은 <Signora, Prego. E caldo> 와 <Memory Lost> 이다. 느림의 미학과 남겨진 여운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어찌되었던 여행은 일상 속에서부터 탈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이 고속도로와 같다면 여행은 국도나 마찬가지다. 유럽여행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동유럽 여행에 경험이 있는 나는 그들과 같이 느림이 없으면 내가 불편해지고 더 스트레스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맛 볼 수 없는 느림을 그곳에서 느낄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직업의식이 있길래 저러는 거야? 라고 생각했던 나는 일 보다 더 중요한게 있고 그것을 위해서 시간을 쓰는 그들의 의식구조가 부러웠다. 그리고 <Memroy Lost> 이 말은 이탈리아어로 놓고가신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라라는 표현을 영어로 직역해서 저런 오류를 낳았다. 아마 이탈리아어로 <Memento Mori> 같은 표현일 것이다. 에필로그에 이 내용이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의 마지막이다 보니 작가의 핵심적인 말이 담겨 있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김작가의 말에 나 또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한다. 저번주 독서모임에서 <잊어버린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만큼 <잃어버린> 그리고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생각은 유익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여행에 대해서 짧은 글을 쓰고 마치려 한다. 나는 누구를 따라 책을 따라 영화를 따라 여행가지 말라 이야기했다. 사실 내가 그랬었다. <비포선라이즈 & 선셋>을 보고 비엔나에 갔다. 그리고 <꽃 보다 누나> TV 프로그램을 보고 두브로니크를 갔다. 이 시절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라는 글귀를 봤으면 <오래 준비해온>에 만 갇혀 살았을 것이다. 왜,어떻게, 무엇을 위해 대답을 오래 준비 했지?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대답>에 집중해야 했다는 것이다. 김작가도 사실 오래 준비해온 것이 아니라 준비했던 것 처럼 "시칠리아요" 대답했던 것 처럼, 우리도 어디를 가고 싶냐 뭘 먹고 싶냐 등등 나에게 즉흥성을 허락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즉흥성이야 말로 느림의 미학이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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