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안도현의 백석 평전을 읽고

 

1. 읽기 전 제목에 대한 감상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여러 작품들이 생각이 난다. 고등학생 때는 당장의 시험을 위해서 현대문학 흐름을 도표로 정리해서 외웠던 기억도 있다. 많은 작품들 중에 문득 기억나는 것은 이상의 날개, 이범선의 오발탄,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B사감의 러브레터, 전영택의 화수분, 최인훈의 광장 등이 있고 계속 떠올리다 보면 끊임없이 적게 된다. 사실 이렇게 문득 떠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내신 공부를 열심히 했다기 보다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시작한 주니어플라톤부터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했던 소그룹 독서논술과외 덕분이었다. 고등학교를 올라가기 전에 한국 현대문학전집을 사서 읽었고 친구들과 나누었고 선생님께 배웠기 때문에 기본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열심히 하는 척만 하고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깊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읽었어도 기억 못 하는 것이다. 백석은 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가. 작품은 일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백석의 외모뿐이었다. 문학 교과서에서는 작품의 일부분을 발췌하고 시작할 때 작가의 사진과 약력을 하단에 배치하곤 했다. 거기에서 본 백석은 지금과 비교해도 모나지 않을 정도로 꽤나 외모가 출중했다. 그래도 이 평전을 읽고 청소년 때 읽었던 백석의 시나 소설이 기억나길 바란다. 무의식 깊은 곳에 잠긴 백석을 깨워주길 바라본다.

일본 야오야마학원 유학 시절의 백석

2. 독후감

 

 


백석 평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사선으로 관통했다. 직선도 아닌 사선으로 표현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5년전 한국사 1급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PMP에 담아 공부한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근현대사 쪽이 외울 것도 많고 비슷한 것도 많아 공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공부한 곳에서만 시험문제가 출제 되어 아슬아슬하게 70점을 넘기고 한국사 1급을 취득했다. 그때 공부한 것과 중등교육과정 문학과 국사 및 한국사 수업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항상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이 보이기 마련이고 백석 평전은 어느 책 보다 그런 책이었다.

인생에서 의미 있게 읽은 두번째 평전, 백석 평전. 첫 번째는 전태일 평전이었다. 아마 중학생 때 전태일 평전을 읽은 걸로 기억한다. 책 속에서 나오는 작업환경은 이러했다. 1층 공장을 단을 하나 쌓아서 2층으로 만들고 사람이 서있을 수 없는 높이에 등기구는 최소화해서 항상 어두운 공장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업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었고 작업 환경이 최악인 곳에서 일하는 한 여공은 결국 전태일에게 “오빠, 나 눈이 안 보여요”라고 무서움을 토로하며 실명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전태일의 마지막인 분신자살 또한 뇌리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전태일 평전과 관련해서 1년전 대학 동기와 내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전태일을 아는 사람이 50%가 안되면 치킨을 사는 걸로 내기를 걸었다. 결과는 나의 참패였다. 전태일과 근로기준법 준수를 연관해서 아는 걸 고사하더라도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들어봤다는 게 상식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전태일을 아는 것은 대학 동기의 직장 동료 기준, 또래는 전무하고 40대에 두 명뿐만이 전태일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전태일을 모를 수 있냐며 핀잔을 주기에는 그 대학 동기가 너무나 당당했다. 전태일뿐만 아니라 백석 또한 이런 맥락 속에서 이야기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백석을 기억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할 터, 다시 한번 내기를 했다가는 또 질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상식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넘어서 슬퍼졌다.

알아야 보인다 했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한국사 시험을 끝내고 그 기념으로 서울로 여행을 떠났다. 실제로 역사테마를 두고 서울여행하고 싶으면 검색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관련 소개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루트까지 안내해준다. 나는 그중 도산공원과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도슨트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 때마침 도착할 때 도슨트를 시작하고 있었지만 최근에 한국사 공부를 해서 그런지 다 안다 자만하고 그 앞서 지나갔다. 그 길에는 지하에는 일본군들이 우리 독립투사들을 어떻게 고문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감옥과 이어져있었다. 어렸을 때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현장학습으로 몇 번 가본 기억이 있는데 그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역사를 공부하고 내 의지대로 찾아와서 그런지 그분들의 고통이 통감된 것이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에는 어느 한 건물 벽에 태극기가 크게 그려져 있다. 그 태극기가 유난히 슬퍼 보였다. 그리고 감사했다. 여행을 통해서 애국이라는 단어를 새로 배운 것 같았고 모처럼 서울 여행이 뜻깊은 추억이 되어 기억 속에 오래 간직할 수 있었다.

<미국사 산책>이라는 책 머리말에서 통섭이라는 단어로 역사를 바라보자 했다. 백석평전 또한 통섭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중일전쟁 이후 사상전향을 한 <무정>의 작가 이광수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 일본의 패전으로 독립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나뉘게 된 지식인들. 이 폭풍 같은 흐름 속에서 백석을 바라보기엔 나의 지식들이 너무 얕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여운형, 장면 등 이런 역사 속 인물들은 나에겐 이름만 익숙한 인물들이었다. 미성숙한 지식들은 항상 근현대사 속 문학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문제가 되었다. 이 사람은 친일파야, 이 사람은 빨갱이야. 쉽게 구분 지을 수 없는 진영에서 갈피를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만약 이 평전 속에 백석이 북한에 남아 있었던 이유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더 정확히는 남한으로 내려올 이유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면 백석은 단지 나는 그를 빨갱이로 낙인찍고 그의 소설이나 시를 읽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근데 여기서 고민인 건 소설과 그 사람의 사상을 분리해서 봐야 되는 걸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작품이 걸작이라면 우리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 최인훈의 광장처럼 제3세계로 간다는 모호성이 정답일까? 근데 이런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때까지 이런 생각들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의 뿌리인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잊고 있었나? 너무 당당하게 살아왔다. 내가 대학 동기에게 전태일을 모른다고 핀잔준 것처럼 어쩌면 누군가도 나에게 핀잔을 줄 수 있다 생각했다. 그때 당당하지 않도록 하자 부끄럽다 생각하자. 그렇게 나는 백석 평전을 통해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사선으로 관통했다.

 

3. 인상 깊은 구절


이광수의 시, 조선의 학도여 중에서 발췌된 것을 읽고

비속어를 사용해서 죄송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시를 보고 “이런 개x끼”라고 소리 내어 욕을 했습니다. 저는 현대문학작품을 무정으로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광수가 뜻깊다 생각했는데, 참 혼란스럽습니다. 문학과 그 작가의 사상을 어떻게 어디까지 분리해서 봐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