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이승우의 마음의 부력을 읽고

[아래 글은 2020년 02월 10일에 작성하고 독서모임에서 나눈 독후감입니다.]
[이 독후감은 2020 제 1회 ㄱㅇ독서모임 문집에 실었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발췌된 부분을 삭제하거나 일부 수정했습니다.]


1. 읽기 전 제목에 대한 감상



<마음의 부력>, 마음은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부력이라는 특징을 띌 수 없다. 부력의 사전적 의미는 물체가 물이나 공기 중에서 뜰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마음은 물체 혹은 실체가 아니기에 눈으로도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인 제목을 가진 <마음의 부력>은 마음의 개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 덕분에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아르키메데스의 이름을 여기저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를 외친 부력의 주인공이다. <마음의 부력> 읽기 전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봐서 그런지 부력에 대한 이런 접근이 자연스러웠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밀도와 질량,부피를 깨닫고 물을 이용해서 금관의 진짜와 가짜를 판별해낸 인물이라 부연설명 하고 싶다.


마음이 부력을 가진다면 볼 수 없는 것이지만 무언가를 통하여 마음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누군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의 마음을 물에 띄워라. 그럼 그의 마음의 진위에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다.

2. 독후감



두번의 정독과 두세번의 속독으로 책을 읽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37페이지의 짧은 분량 덕분이었고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책 속 여러 비유 중 성경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2주동안 고민 끝에 성경 이야기를 최대한 배제한 채 독후감을 쓰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성경을 포함시켜 번외편으로 독후감을 한 번 더 쓰려고 한다. 성경을 읽는 자만이 그 독후감을 보고 이해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유효할 것이라 생각하며 공유는 따로 하지 않을 예정이다.


화자와 나는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둘 다 형제가 잇지만 나는 형이라는 점이다. 동생의 허락없이 동생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느낀 감정들을 동생에게 직접 말 해보고 싶다. 난 책 속에서 화자가 그의 형이 죽고나서 그제서야 말하지 못 한 것에 대해서 후회했던 것 처럼 나도 화자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싶지 않다.


화자의 형과 나의 동생은 비슷한 점이 많다. 나는 가족 및 일가친척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태어나서 부터 순한 성격으로 친척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나는 "XX같은 애 있으면 몇명이라도 키우겟다"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연년생인 나의 동생은 나와 반대로 많이 예민한 아이로 아토피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동생은 친척들에게 "가려워서 어떻게 하냐, 이거 바르면 안가지럽다, 긁지마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비교당하는 동생은 더 예민해 질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난 형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생한테 많은 것을 빼앗았다. 컴퓨터 앞은 항상 내가 앉았고 그 옆은 동생이 앉았다. 나는 꽤나 오랫동안 동생이 내가 게임을 하는 것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동생은 그것이 아니라 구경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였다. 동생의 고백을 들은 것은 스무살이 넘고 한참 뒤에나 였다. 우리 집엔 아버지가 PS2 콘솔을 사주셔서 조이스틱이 두개 였지만 서도 게임CD를 고르는 것 또한 내 위주였다. 나의 취향이 동생의 취향과 일치할 것이라 생각했고 마찬가지로 동생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동생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유년기에 PC와 콘솔게임을 해 볼 만큼 다 해봤다. 욕구 충족시기에 적절하게 다 채우고 해소 했다. 하지만 내 동생은 욕구를 채워줘야 하는 소중한 기간에 내가 방해하고 박탈해버린 것이다. 나는 LOL도 해본적 없는 게임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내 기억에 LOL은 고2때 성황해서 지금까지도 인기게임이고 아직까지 또래 친구들에게 언급이 되는 게임이다. 내가 게임에 관심 없을 수 있는 이유는 적절한 시기에 다 욕구 해소를 했기 때문이라 본다. 그에 비해 동생은 현재 자기 방에 300만원 컴퓨터를 들일 정도로 게임을 좋아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동생에게 중요한 시기를 빼앗아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깨달음이 없었던 나는 단지 동생이 한심스러워 보였다. 아직까지 이 나이 먹도록 게임을 좋아하고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지 않아 보였으니 말이다.


동생은 자기 주관이 강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는 하고 하기 싫은 것은 똑부러지게 안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나는 소위 어른들이 이뻐하는 애로 자라왔다. 공부는 잘 하지 못했지만 학원도 열심히 다녔고 야자도 열심히 했다. 부모님 속 썩히는 일 자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은 내가 보기에 자유로운 영혼이 였다. 화자의 형 또한 그랬다. 대학 진학 후 학과와 맞지 않으면 그만두고 연극이라던가 글을 쓰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집중을 했다. 화자는 이점이 오히려 부럽다고도 했다. 나도 내 동생을 보고 그런 감정을 느끼곤 했다. 내 동생은 그림을 잘 그린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부터 미술학원을 다니며 그림 실력을 키워갔다. 그리고 언제는 외주를 받아서 그림 알바해서 돈도 벌기도 했다. 갓 성인이 된 내가 보기에 그런 점이 되게 부러웠다.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잘 알고 뭘 잘하는지도 잘 알며 그것을 위해서 가는 것이 말이다. 나는 항상 타인에게 나를 맞춰왔기 때문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나의 대한 이해는 낮았다. 그런 나의 시점으로 동생을 바라 볼 때면 동생은 하고싶은 것을 잘 하는 사람으로 보였고 부러웠다.


화자의 형제를 보며 동생에게 정신적으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과거의 내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부끄러워지고 동생한테 죄스러워졌다. <형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생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부모님의 사랑, 친척들의 따뜻한 관심, 어른들의 관심 등등. 체격이 나 보다 크고 잘 먹는 형을 둔 동생은 소외감을 느꼇을 것 같다. 그 속에서 자라온 것이 되게 고독했을것이다.


화자 보다 내가 지금 좋은 위치에 있다고 장담하는 건 내 동생은 건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을 사랑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화자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나와 비슷한 감정이라 생각한다. 화자의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것도 화자의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부터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따뜻하게 챙겨주고 배려있게 형제애를 가져왔으면 어머니도 그러지는 않을 것 이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에게 큰 효도는 자식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다. <마음의 부력>을 통해서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동생에 대한 감정을 꺼낼 수 있었다. 그 부력이 나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겠다 싶으면서 이 계기로 동생한테 미안하다 사랑한다라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