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20년 8월 15일에 작성하고 독서모임에서 나눈 독후감입니다.]
[이 독후감은 2020 제 1회 ㅁㅅㅋ 광양독서모임 문집에 실었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발췌된 부분을 삭제하거나 일부 수정했습니다.]
1. 죄와 벌, 제목에 관하여 읽기 전 본인의 감상
죄와 벌,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원인과 결과 급으로 찰떡 궁합인 것 같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죄와 벌을 두고 생각할 때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죄라는 것을 정의할 것인가”이다. 법치국가에서 사는 우리는 가장 중요한 헌법을 준수하며 살아가게 된다. 어떤 나라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넘어서 죄라 불리는 것이 있고 양심이라는 영역을 뺄 수 없으며 짚어봐야 한다. 이 생각을 중심으로 책을 읽으려 한다. 그리고 혹시 죄와 벌을 은유로만 사용해서 다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그 진짜 의미를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2. 독후감
죄와 벌이라는 책을 신앙서적이라 생각하고 읽어도 손색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소냐와 페트로비치가 로쟈(라스콜니코프)의 고통의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꽤나 길게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간 장마가 지속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죄와 벌 주인공인 로쟈의 염세적인 성격이 한 몫 했다. 책을 읽어가기 위해 그의 우울함을 받아내야 했기에 힘들었다. 다른 표현을 해보자면 로쟈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이 죄와 벌이라는 책이 재미없었다.
전체적으로 비춰지는 로쟈의 이미지는 약골이며 그것을 면피성을 띈 잦은 아픔이라 생각한다. 약자에 대한 관대함이랄까? 합리적으로 의심 해 볼만한 정황도 로쟈의 건강으로 인해 쉽게 넘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로쟈는 계획대로 일이 풀리면 건강이 회복되고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몸이 나빠지는 일관성을 보이는 인물이다. 마치 뉴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정계 및 재계 고위인사들의 회피기동처럼 말이다.
로쟈의 살인은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 듣게 된 대학생과 장교의 대화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있다. 그들의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 없을까?”라는 말은 로쟈에게 기폭제가 된 셈이다. 많은 사람들 중 왜 노파를 택하게 됐나 생각해보면 단지 로쟈의 삶 속에서 가장 골치거리인 돈과 관련되어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누군가의 유능한 추리로, 로쟈의 실수로 라도 수사망은 점점 좁혀져 갔다. 로쟈가 자수할 수 있었던 표면상의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는데, 그가 소냐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사실 로쟈는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걸리지 않고 자기 선에서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 그에게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이후에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경찰서에 갔지만 순간의 욕심으로 자백하지 않고 돌아 나왔고 그 때 소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가 그녀를 보고 끊고 싶었던 고통들이 다시 연속되고 오히려 그 고통이 최대치로 달하였기 때문에 로쟈는 다시 돌아가 자수했다. 죄책감 때문에 자수했다 보다 본인이 지쳐서 정말 답이 없으니까 자수했다 가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소냐와 페트로비치 라는 인물이 없었으면 로쟈는 쉽게 자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추가적살인을 범했을 수 도 있다. 그런 조짐이 보였기에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선택지는 자수와 자살 뿐 인데, 위와 같은 가정이라면 로쟈는 자살을 선택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자살이 치사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지은 죄를 속죄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 것인데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하고 실제로 자살 그자체가 속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쟈의 결말이 되게 만족스러웠다. 인간이 죄를 짓고 벌을 받지만 벌을 주고 죄를 사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3. 인상 깊었던 문장
양심이 있는 자는, 자신의 오류를 의식한다면 괴로워하겠죠 이게 그에겐 벌입니다. 징역과는 별개로
죄와벌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김연경 (옮긴이) 민음사 2012, 476p
라스콜니코프의 말이고 라주미한, 페트로비치와 자묘툐프와 함께한 자리에서 로쟈의 논문을 두고 이야기 할 때 나온 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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