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몇 시 인지도 몰랐어

배리 해리스의 연주
사이러스 체스트넛의 연주

오늘 데이트는 전시회 관람이다.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분주히 준비했다. 약속시간 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일찍 출발했다. 일찍 출발해도 그녀를 일찍 만날 수 없는 것을 알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녀와 함께 있다. XX역 X번 출구 앞에서 만나서 걸어가기로 했다. 이미 약속장소에 도착한 나는 그녀가 일찍 와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가 걸어올 길을 주시했다. 약속한 시간이 5분 지났다. 하지만 나는 그 장소에서 35분을 기다렸다. 30분은 기다린 시간이 아니니 유효하지 않다. 5분 밖에 셀 수 없어 괜히 기분이 나쁘다. 결국 그녀는 15분이 지나서 도착했다.

“미안해 많이 늦었지?”
“아니야 지금 몇 시 인지도 몰랐어”
“거짓말”
“진짜라니까?”


진짜라는 말은 정말 진짜다. 저 멀리서 그녀가 뛰어올 때 기쁨으로 가득 차 이때까지 기다린 시간을 잊어버렸다. 그녀 보다 일찍 와서 기다리면 어떠한가 단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봐서 좋다. 그녀의 사과에 짧게 답한 나는 그녀가 왜 늦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전까지 가졌던 생각과 감정보다는 빨리 그녀와 함께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회장으로 가고팠다. 약속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릴 때 기대감으로 심박수가 빨라졌는데 여전히 진정되고 있지 않다. 어디가 아픈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서 그런가? 그런 이유보다도 지금 그녀의 근황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좋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에도 내 귀는 쫑긋 그녀의 말소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전시회장까지는 여기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걸어서 20분 걸리는 거리로. 그녀의 의사는 묻지 않은 채 순전히 내 욕심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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