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양귀자의 모순

1. 첫인상

 
몬순이 먼저 떠올랐다. 2014년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편혜영작가의 몬순 말이다. 오히려 모순이 더 익숙하고 흔한 단어인데도 불구하고 몬순보다 모순을 먼저 의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자책이 있나 살펴봤다. 안타깝게도 전자책 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았다. 아쉽긴 했지만 오랜만에 책을 구매해서 읽어봐야겠다 했다. 
 
책을 고르기가 힘들 때 종종 교보문고 홈페이지를 들려 베스트셀러를 찾아본다. 거기서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본 것 같다. 그래서 독서모임에서 모순이 정해졌을 때 생소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단지 모순이 어떤 책이길래 베스트셀러에 있을까? 궁금하긴 했다. 편견 가득히 양귀자라는 예스러운 이름과 몬순도 아니고 모순인 제목이 내용이 궁금하기보다. 왜 베스트셀러일까? 이게 더 관심이 갔다.
 
2년 전에 독서모임에서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었다. 그런데 최근 베스트셀러에 이 책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다. 공부왕천재홍진경에서 소개가 되었다는 식으로 설명이 되어있다. 그 덕분에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누군가의 영향력이 반영이 되는 구나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 누군가가 출판사가 될 수도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었다.
 
모순이 9월 3주차(2023년 09월 09일 ~ 2023년 09월 15일) 주간베스트셀러에 4위에 자리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가타부타 따져보는 것보다 그냥 베스트셀러를 베스트셀러대로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의심의 눈초리를 좀 내려놨다고 표현해야 할까? 의도성이 있는 누군가에 계략에 당해주자!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유해하지 않는 거라면 그리고 그런 게 베스트셀러에 있겠냐만은 한 권이라도 더 읽어서 교양을 쌓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오히려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만약 고리타분한 성격을 고치지 않았으면 불편한 편의점을 읽어보지도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오디오북으로 읽었지만 나름 재밌게 읽었다. 독서를 골고루 하는데 갈길이 아직 멀었나 보다. 불편한 편의점을 이어서 모순도 그 길에 페이스메이커가 돼주길 기대해 본다.


 
양장본의 두꺼운 표지를 열자마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미동 사람들의 작가가 양귀자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도대체 누구이길래 모순이 베스트셀러에 있나 의심을 많이 품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되게 반가웠다. 교과서에서 배워서 익히 알고 있던 싱싱청과. 모순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뵙게 되어서 거듭 반가웠다.

2. 아버지의 책장

 

 
가끔 아빠와 공유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이 책 읽어봤냐고 가볍게 던져보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책 읽어봤냐고 물음을 던졌다. 근데 아니라 다를까 기억을 더듬으시더니 소파 뒤에 있는 책장을 살펴보고선 책을 꺼냈다. 아빠는 모순이 나온 지 약 5개월 후에 책을 사서 읽었던 나의 선배님이셨다. 그리고 아빠는 책 위에 구매한 날짜와 책 맨뒤에 독후감을 써놓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아빠의 짧은 소회를 맛볼 수 있는 작은 행복도 누릴 수 있었다.
 

행과 불행의 교차점에 서 있는 게 인생이다.

 
이런 독후감을 남기셨다. 좀 더 생각해봐야 하는 독후감이었다. 30대 초의 아빠와의 만남 어쩌면 나와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아빠와의 만남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책이라는 게 그리고 기록이라는 것이 이런 장점이 있다. 이것이 또한 묘미라고 강조하고 싶다. 내가 책을 읽고 기록하려는 노력 또한 아빠와의 같은 동기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3. 독후감

 
양감(量感)이 없다고 생각한 안진진은 우울했다. 그것을 해결하고자 그녀는 결혼이 좋은 방법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삶의 부피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어머니의 삶을 들춰보는 것으로 발전됐다. 그녀의 삶의 뿌리를 살피기위해서 그런 시도는 필요했다. 그녀에게는 나영규와 김장우 이렇게 두 명의 남자가 있다. 그 남자들 중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할지 그녀는 쉽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런 시작으로 이 소설은 안진진이 결혼 상대로 누구를 고를지 결심하는 그 전심에 대한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더 많이 가는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이 책을 읽은 당신은 어떤 이에게 관심이 있나? 나는 특히나 김장우에게 연민이 갔다. 인생은 쓰디쓰기 마련이다. 한 여자와의 결별이 김장우의 인생 전체를 휘청거리게 하지는 않겠지만 낙심해할 그를 생각하면 측은지심이 들었다. 안진진은 도대체 그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왜 하고 결혼할 것 같은 여지는 왜 남겼을까? 그렇지만 안진진을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단지 부채의식으로 무른다는 것이 더 이상할 따름이다. 인생은 이기적인 것이고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볼 때 그녀는 잘했다.
 
충격을 안겨줄 정도로 그녀의 엔딩은 나영규와의 결혼이다. 그 변곡점의 중심에는 엄마와 쌍둥이 여동생인 이모의 자살이 있었다. 엄마와 이모의 인생은 자석의 N극과 S극의 간격처럼 서로 극간에 서 있다. 안진진의 엄마는 주폭을 일삼는 남자와 결혼했고 이모는 남들이 보기에도 좋은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이모는 이모부를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색채가 없는 것과 더불어 변함이 없는 삶은 이모부가 추구하는 삶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모는 그와 반대였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아이들은 그곳에서 정착할 모양이었고 로봇 같은 이모부와 계속 쭉 살아야 할 이모였다.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와 다른 이모는 그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누구보다 좋아했던 이모였기에 안진진은 그녀의 죽음이 큰 파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모의 죽음이 없었다면 의사(擬似)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나영규의 청혼을 거절했을 것이고 진정 사랑이라고 느꼈을 김장우와 결혼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나영규와의 결혼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는 가정이 안진진의 결심을 비틀게 되었다. 사랑이라 느낀 김장우와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나중에는 불행으로 비춰 줄 수 있으니 지금 당장 불행할 것 같은 나영규와의 결혼을 택한 것일까? 이모부와 같은 나영규이지만 서도 말이다.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느냐? 라는 관용구가 안진진에게 적용이 될 듯하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라고 말한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 말도 맞다. 사람은 지긋지긋하게 고집스러운 부분들이 있다. 먹어보지 않고 똥과 된장을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삶은 그럴 여유를 줄 만큼 상냥한 녀석이 아니다. 한낱 행복할 것 같은 이모의 죽음을 경험한 안진진은 그녀가 했던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그녀가 겪은 일과 그녀의 선택을 미뤄보자면 맞는 말이다. 탐구하며 살 정도로 삶은 기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누구와 결혼하는 것보다 결혼 자체가 메시지이지 아닐까 늦게나마 생각을 해보았다. 안진진이 처음에 품었던 고민은 삶의 부피감이었다. 결혼으로 무게감을 가지려고 했던 그녀였다. 결혼 자체가 부피를 키워주는 것인셈이다. 그 내용에 대한 걱정이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 고민이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안진진의 인생은 자살한 이모와 같은 결이지 않았을까 싶다. 누가 보더라도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녀는 뭔가 텅 빈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결혼을 원한 걸까? 결혼을 선택함으로써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선택지 중 안진진답지 않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인생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여러 상황 중 결혼을 선택한 안진진이었다면 나영규와의 결혼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기도 하다. 사랑보다는 무게감이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4. 인상 깊은 구절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2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