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정호승의 산산조각

1. 제목을 보고 든 생각

산산조각이라는 제목을 보고 파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떤 것이 산산조각이 나서 그 결과가 된 잔해 말이다. 책 제목이 산산조각이라니 그 파편들의 이야기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것을 생각해 보면 좀 슬프다. 책을 읽게 되면 그 어떤 것이 산산조각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테니까.
 

 

2. 독후감

 
우화를 얼마 만에 읽어보는지 모르겠다. 가장 유명한 우화는 <이솝우화> 그리고 <금수회의록>이 생각난다. 최근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소설 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또한 떠올랐다. 우화를 하나의 장르라고 구분 지어보자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장르일 것이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도 문제지만 독자들의 관심도 관건이다. 이솝우화는 교훈이 주제이고 금수회의록은 세태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친근한 소재인 동물을 화자로 삼아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읽게 하는 것이 우화의 큰 장점이다. 직접적으로 교훈을 빙자한 잔소리 보다 이솝우화 중 여우와 신포도를 읽어주는 것이 부담이 덜 하다. 결국 우화는 어쩌면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유익인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호승 시인은 우화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은 걸까?
 
정호승 시인은 친절하게 작가의 말에서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화 속 내용에서 죽음 그리고 변화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수의는 당연히 망자에게 필요한 물품이고 동(銅)종은 불에 타버려 형태를 잃어버렸다. 17편의 우화들을 연신 읽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거룩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나 스스로 돌이켜보는 성찰의 시간을 본의 아니게 가지게 되어서 그런 걸까? 나는 <숫돌> 편에서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선암사 해우소> 편에서는 감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정호승 작가와의 의도와 다르게 독자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내용도 다르고 의미도 다를 것이다. 그것이 문학의 묘미이겠지만 우화는 그 역할을 더 톡톡히 해주고 있다.
 
<낙산사 동종> 편의 첫 페이지를 펼치고 화재 이야기가 나올 것을 예상했다. 2005년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느 때처럼 하교를 하고 거실에 티비를 켰다. 티비에는 낙산사 화재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소방헬기가 연거푸 화재진압을 하는 그런 영상이 라이브로 송출이 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이 낙산사까지 퍼지지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 어린 나이에 뭐가 재밌었는지 꽤나 관심 있게 뉴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다음날 낙산사까지 불이 번졌다는 이야기와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푸르르던 그 장소가 불타 없어졌다니 말이다. 그 이후 초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현장체험학습으로 그때 화재현장을 찾아갔다. 여러 나무들이 밑동만 남아 절망적이었다. 중간중간에 소나무 묘목들이 심어진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어떤 이에게 추억인 장소가 한순간에 없어졌다니 초록색이 연발하던 장소가 황토색으로 뒤집어진 곳이 되어버렸다. 화마 속에 있던 동종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낙산사가 사라지고 추억으로만 남겨진 그곳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누구나에게 이야기가 있다. 17편의 우화 중에 하나라도 엮이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첨성대일지라도 말이다. 우화는 개인적인 경험이 합해져 그 이야기가 더 흡입력 있게 다가온다. <하동 송림 장승> 편에서는 익숙한 장소이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쉽게 펼쳐 소나무의 역경을 그려볼 수 있었다. <걸레> 편에서는 팬티가 걸레가 된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다 우화가 되었다. 실제로 팬티가 걸레로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 감동했을 것이다.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이라도 우리에게 지혜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물과 그것을 담고 있는 컵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보면 재밌다. 가치 없는 존재가 없다고 말한 정호승 시인은 가치를 발견하고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숫돌에게 사랑을 바윗돌에게 감사를 동종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가치가 있는 존재들에게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관심을 주고 자세히 살펴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웃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들에게 가치가 있다는 셈 아닐까? 웃게 해 줘서 고맙다.
 
 

 3.인상 깊은 구절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고백하기 딱 좋은 부분이었다. 그렇다 사랑은 희생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주는 거야. 그게 바로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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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내 몸이 닳는다고 먹도 갈지 않고 칼도 갈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그게 바로 죽음이야. 죽지 않으려면 우리는 계속 우리 일을 해야 돼. 자기희생 없이는 남을 도울 수 없는 거야.”

  “자기희생?”

  나로서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동안 남의 칼을 갈아주면서도 나 자신을 희생한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응, 자기희생이야. 우리의 가치는 자신을 희생하는 데 있어. 희생 없는 사랑이 없듯이 희생 없는 가치는 없어.”

  벼루는 너무나 진지했다. 마치 칼갈이 아저씨의 아버지가 아들을 걱정하는 눈빛 같았다.

  “내가 내 가치를 꼭 찾아야 될까?”

  “그럼, 찾아야지.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발견해야 할 의무가 있어.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사랑해야 돼.”

  “사랑을, 어떻게 하는 건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사람들의 칼을 갈아주면 되는 거야. 그건 결국 자기 자신을 주는 거야. 그게 바로 사랑이야. 네가 닳지 않고는 칼을 갈 수 없는 거야. 나도 닳지 않고는 먹을 갈 수 없어. 무딘 칼날을 세워주는 것, 먹을 갈아 붓글씨를 쓰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고 우리 존재의 본질이야.” 

 

- <산산조각>, 정호승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88

 4. 정호승 시인의 인상 깊은 시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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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꽃 지는 저녁>, 지은이 정호승, 글씨 강병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4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