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 전에
제노사이드 그러니까 집단학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확장된 것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덕분이었다. 제주43과 여순사건을 넘어서 발칸반도의 대학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을 알게 되었다. 캄보디아로 파견 간다는 여자친구의 말에 자연스럽게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캄보디아 역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 <킬링필드>를 찾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돈주고 볼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서비스하고 있는 OTT는 없었다. 끈기를 가지고 찾아보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아쉬운 대로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를 보았다. 다행히 넷플릭스에서는 서비스하고 있다.
프놈펜이라는 도시가 가졌던 슬픔을 느끼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공감 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는 앙코르와트 유적이 유명하다. 하지만 그 놀라운 건축물보다 인간이 창조해 낸 이념이 어떻게 대학살을 일으키게 됐는지 그것이 더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을 가득 품고 이번 캄보디아 여행을 시작했다.
2. 프놈펜 킬링필드
지도를 살펴보면 프놈펜 시내에서 좀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 중국인들이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었고 그곳을 찾아낸 크메르루주들은 대학살 현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은 발견 당시보다 많이 가려진 것들이 많아서 잔인함과 추악성이 덜 느껴졌다. 그럼에도 사진 찍는 것이 거북했다. 사진은 최소한으로 찍고 그 대신 오디오를 빌려 한 시간 동안 그 고통을 함께하기로 했다.
고삐가 풀려버린 그들은 단지 한 낱 짐승에 불과했다. 윤리와 규범은 그들에게 찾아볼 수 없었다. 구덩이가 파져 있는 곳에는 유골들이 넘쳤으며 부패하여 땅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썩는 냄새를 방지하기 위해 DDT를 살포하기도 하고 음식에도 DDT를 섞어 주기도 했다 한다. 번호를 따라가며 오디오북을 들이니 점점 그때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이렇게 평화롭고 선선한 바람이 분 곳에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위령탑에 있는 수많은 두개골을 보고도 그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 현장을 발견해 낸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3. 뚜얼슬렝
프놈펜 시내에 있던 이곳은 학교였다. 크메르루주들이 프놈펜을 점령하고 나자 이곳은 수용소로 변했다. 당연히 고문도 일삼았다. 교실이 수용소로 용도가 변경되었고 교정에 있던 철봉들은 고문에 사용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인민들을 교육하는 그런 장소가 어떻게 고문의 현장이 되었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A~D동으로 4개의 건물로 구분되어 있고 고문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찍힌 피해자들의 사진은 교묘하게 블러처리가 되어있다.
다른 동에는 고문의 모습들을 가감 없이 담아낸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마치 중세시대 마녀사냥을 하기 위해 기괴한 형벌을 만들어 낸 것처럼 기상천외하게 그들을 고문해 냈다.
또 다른 동에는 그 시절 수용소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1층은 콘크리트벽 2층은 목재벽 3층은 그것들을 다 헐어버린 채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겨우 사람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보니까 서대문형무소 지하에 있는 고문체험실이 생각이 났다. 벽에
LES 3 CHEVALIERS
라고 글귀가 써져 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프랑스어로 세 명의 기사라고 하는 저 문구는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음을 암시해 주는 걸까? 책을 읽고 현장체험을 해보면 이 시대를 살게해준 기성세대들에게 참 감사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들의 희생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4. 마무리
사실 지금 동남아시아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미얀마이다. 군부독재로 인하여 민주화 혁명이 제대로 꽃 피우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적법한 절차로 투표가 행해졌음에도 개표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미얀마의 군부는 아직까지도 미얀마 국민들을 탄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 싶다.
대학살의 역사탐방을 이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으로 삼아 행보를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폴란드에 가서 아우슈비츠도 가보고 싶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가서 스레브레니차도 가보고 싶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앞으로 한 달 뒤에 있을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도 깊은 통감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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