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운동&건강

나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2024년 지리산, 덕유산, 월출산 등 산행 보고서

소한초이 2025. 1. 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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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산에 대한 인식


등산에 대한 추억이 많다. 어렸을 적 적적한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동네 뒷산을 오른 경험도 있고 친구와 함께 등산을 하러 간 기억도 있다. 그래서인지 등산에 대한 그렇게 큰 부담감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 등산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등산은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활동이고 그 시간을 함께 가는 사람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공통된 우스갯소리가 있다. 상급자가 주말에 등산을 가자고 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이 따라간다는 이야기. 그리고 눈치 있고 센스 있는 상급자라면 등산 같은 팀파워 같은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었다. 실제로 취업해서 회사를 다녀보니 안전산행, 망년회, 신년회라는 명목으로 등산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조직에는 그런 행사는 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등산을 하러 간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래서 그런지 등산이라는 것 자체가 진부한 운동이자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산에가면 다 5060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등산 인플루언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서울, 경기에서는 젊은 세대들 중에서 등산이 유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유행이라고 말하는 게 거창하지만 실제로 인스타에 해쉬태그로 등산을 검색하면 인증샷이 많이 나온다.
 
작년 여름 태국법인에서 태국인 직원 한명이 우리 부서로 교육파견 왔다. 약 5달을 지내는 장기파견이었다. 그분의 별명은 "Moo"다. 얼떨결에 점심을 같이 먹으며 친해졌다. 무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러닝을 하는 근면성실한 사람이었다. 진짜 그는 매일 달린다. 5달 동안 무와 함께 추억도 쌓고 대한민국의 절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전에 언제 등산을 해봤나 생각해 보니 신입사원 연수 때 단체로 산에 올랐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다음 최근은 언제일까 생각해 보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10년 동안 등산을 거의 한 번 했다.

 

2. 등산

2-1. 광양 백운산 백운산상봉 (24.08.10)

 

 
 
무와 함께 지리산과 같은 명산을 오르기 전에 연습이 필요하겠다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이 지역에서 이름 나 있는 산을 등산하는 것으로 훈련하자고 이야기 했다. 무는 등산화가 없어서 그냥 쿠팡에서 3만 원짜리 등산화를 구해줬다. 감사하게도 같이 일하고 있는 직장후배도 같이 동행한다고 해서 심심하지 않게 3명이서 백운산을 올랐다. 
 
그래도 나름 제일 짧은 코스를 검색해서 등산코스를 정했고 신선대로 올라 백운산상봉을 찍었다. 이 날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정체가 모호한 것이 정상 부근에 끼었다. 가끔 비도왔다. 올라가는 내내 태국에서는 이런 풍경을 경험할 수 없지?라는 대화를 나누며 등산을 했다. 오랜만에 등산하는 거라 어렵게 올라갔다. 가파른 구간은 200m씩 쉬면서 올라가고 그랬다. 하지만 정상을 찍고 나니 힘든 것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정상을 찍었다는 성취감으로 기분이 좋았다. 더불어 건강한 운동을 했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2-2. 울릉도 성인봉 (24.08.24)

 

 
 
지리산 산행은 일정 조정으로 인해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하지만 좀 더 일을 크게 벌려 울릉도에 가자고 의견을 모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감사하게 두 명의 직장후배가 동참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와 함께 두 명이 더 함께해 4명이 울릉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무의 콘셉트에 맞추어 울릉도에서도 등산을 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울릉도의 성인봉도 명산에 속해 있었다. 배에서 자는 1박 2일로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다행히 등산과 약간의 풍경 구경과 해수욕을 할 수 있었다. 
 
짧은 코스는 모름지기 가파른 경사를 포함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등산 중 한명이 중도포기를 했다. 같이 끝까지 올라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한 명이 하산하니 마음이 많이 쓰였고 주말에 상급자가 등산을 하자고 끌려가는 그런 회사원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다. 하산 한 후배님도 나 때문에 억지로 산행을 감행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나도, 같이간 후배도 무도 가장 동쪽에 있는 산을 정복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 정복했다는 기쁨도 있지만 생애 처음 울릉도에 왔다는 그 자체로도 뜻깊은 경험이었다. 
 

2-3. 무주 덕유산 향적봉 (24.08.31)

 

 
 
최대한 많은 명산을 소개해주고 싶은 욕심에 등산 스케줄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무주 덕유산을 가자고 했다. 이번에는 무와 나 밖에 시간이 안되었다. 아침 일찍 만나 두 시간정도 운전해서 구천동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이번코스는 등산해서 향적봉을 찍고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 택시 타고 다시 구천동탐방안내소에 도착하는 거였다.
 
완전여름이라 더운것도 더운 것이지만 날씨가 좋아서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지리산 천왕봉도 보일 정도니까. 정상에서 김밥을 먹고 케이블카를 타고 손쉽게 내려왔다. 택시도 잡기 쉬웠다. 이번에도 우리나라의 명산을 정복했다는 업적을 쌓었다는 성취감이 들었고 내가 무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는 만족감도 느꼈다. 
 

2-4. 산청 지리산 천왕봉 (24.10.25)

 

 
 
무가 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지리산은 꼭 데려가야 되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지리산 산행 일정을 잡았다. 그렇지만 지리산 산행 그 다음날 월출산 사자봉 릿지등반이 있어서 부담감이 있었다. 릿지등반이 처음이라 멋도 모르고 무에게 지리산을 소개해주고 싶어 무리한 일정을 감행했다. 
 
가장 손쉬운 코스를 찾았다. 그래서 중산리에서 버스를 타고 환경교육원까지 버스를 타고 그곳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단풍이 만연한 지리산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가을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가 사는 태국은 우리나라처럼 가을과 겨울이 없으니 뜻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천왕봉에 올라오니 술판을 벌이는 아져씨들 무리가 있었고 아직도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구나 놀라웠다. 우리는 장터목에서 김밥을 먹고 다시 중산리로 내려왔다. 아침에 주차할 곳이 없고 아직 주차장 공사 중이어서 한 참 밑에 갓길에 주차를 해놨다. 하산을 완료했는데도 두 번 하산하는 느낌이었다.
 

2-5. 영암 월출산 사자봉 (24.10.26)

 

 
 
클라이밍 동호회에서 릿지등반 일정이 잡혔다. 매번 새로운 것에 대한 부담감과 고소감에 대한 두려움으로 리드나 릿지등반을 피해왔었다. 하지만 동호회에 있는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요구에도 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100% 나의 기대나 욕구로 등반을 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나의 의식으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
 
릿지등반을 하기 전에 짧게라도 하강연습과 자일,로프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다행히 이 작은 도시에도 유능한 선배님들이 많았고 회사 스포츠센터 지하 1층에 클라이밍세터가 작지만 높게 있기 때문에 하강을 배울 수 있었다.
 
릿지등반을 하러 가기 그 전날 무와 지리산 등산을 했었는데 이게 매우 큰 패착이 되었다. 사자봉 릿지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최근 추석연휴와 유럽여행으로 암장에서 운동을 많이 하지 못했었다. 그런 컨디션으로 릿지등반을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고 쉽다고 했던 동호회 선배님의 말씀을 너무 쉽게 믿었었다. 이런 데다가 그 전날 지리산 등산을 해서 허벅지와 종아리는 다 알이 배겨 있었고 종아리에는 힘주기 조차도 힘들 지경이었다. 
 
원래 4시간을 예상했던 등반은 8시간이 넘어 마무리가 되었고 일출시간지나서 저녁 7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보자면 사자봉 릿지는 총 10 피치의 구간이 있다. 이번 릿지등반에서 나는 3 피치 이후에는 맥이 다 빠져서 전의를 상실했다. 포기하고 싶어도 이 이후로는 탈출로가 없어서 10 피치까지 완등하지 않으면 등반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헬기를 부르지 않은 이상. 아무튼 죽기 살기로 등반을 했고 같이 동행해 주셨던 3분의 선배님들 덕분에 등반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등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도감과 경치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할"정도였다. 그리고 나 때문에 피해본 선배님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절로 났다. 팀으로 등반한 이상 하나로 움직여야 하고 다 같이 감당해야 되는 것이라며 위로해주었던 선배님들이 너무나 감사했다. 나도 그들처럼 되야겠다. 다짐하며 기성세대들의 커다랗고 왜곡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6. 산청 지리산 천왕봉 (24.12.14)

 

 
 
저번에 사자봉 릿지갔던 팀 그대로 지리산 겨울산행을 하기로 했다. 겨울에 등산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이겠다 싶어서 호기롭게 같이 가겠다 이야기했다. 새롭게 준비물로 아이젠, 등산스틱 그리고 스패츠까지 구매하였다. 방한용품으로 귀덮개나 장갑은 회사 직장선배에게 빌려 썼다.
 
무와 갔던 코스 그대로 갔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저번에 무와 함께 했을 때는 버스 타고 몇 킬로까지 이동했기 때문에 일부구간은 스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주차장에서 바로 등산을 시작했다. 3명의 선배님은 젊었을 적부터 산악회출신이셨고 아마 히말라야 어떤 산맥 트래킹코스도 완주하셨던 걸로 알고 있다. 아무튼 이분들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오버페이스가 왔다. 초반 30분은 너무 힘들었다. 사자봉의 추억이 쓱 올라와 미안할 뻔했지만 다행히도 러너스하이는 금방 찾아왔다. 그리고 눈 덮인 지리산의 모습을 보니까 설레었다. 이 감정 덕분에 없던 힘도 불쑥 났다.
 
장터목에서 라면을 먹고 내려왔다. 평소에 등산이라면 그저 김밥 한 줄이었는데 선배님들이 코펠 같은 캠핑장비들을 다 가지고 오셔서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또 다른 경험이었다. 
 

2-7. 산청 지리산 천왕봉 (25.01.03)

 


 
작년에 우리 회사는 격주로 주 4일제 근무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니까 2주의 한 번씩 금요일에 쉬는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면 평일에 8시간 일하는 것을 9시간으로 한 시간 더 일함으로써 8시간을 아끼고 하루를 온전히 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금요일에 쉰다.
 
최근 무의미하게 연휴를 보내는 경우들이 많았다. 아침에 늦잠 자면 오전이 날아가고 힘내서 침대에서 벗어나면 이미 해가 져버렸다. 요즘 계속 독서모임에서 휴식과 쉼에 대한 주제로 책을 많이 읽어오고 있는데 이런 휴식은 결코 뇌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기 파괴적인 휴식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될지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당장 내일 지리산을 간다는 클라이밍 동호회 선배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곧 장 동참하게 되었다.
 
이번 지리산 겨울산행은 평소와 다르게 같은 등산코스를 역순으로 올라갔다. 전에 비해 하늘이 매우 맑았다. 광주의 무등산도 보였고 무주 향적봉도 보였다. 그리고 하동 발전소와 광양제철소도 보였다. 사실 무랑 등산했을 당시 가을에도 충분히 보였을 법한데 그때는 천왕봉 첫 번째 정복이었기 때문에 1915m를 올랐다는 그 자체에 집중한 나머지 주변을 잘 살피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정상에 바람도 많이 안 불고 눈도 안 내리고 하늘도 맑고 구름도 없어서 경치를 구경하기 딱 좋았다.
 

3. 등산에 대한 소회

 
직장인들이 직장 상사와 싫어하는 활동 중 하나이기보다 등산은 그저 여러 스포츠 중 하나였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물론 같이 등산했던 사람들이 모두 회사 조직도에 찾아보면 조회가 되는 인물들이긴 하다.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이 어떻게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중요했던 것 같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파트에서 등산을 가자고 하면 여러 번 재고해 볼 것이다. 더군다나 파트장과 간다고 하면 더더욱이나 말이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무언가를 할 때 그 누군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팀파워활동 혹은 팀빌딩활동에서 등산은 조직활성화에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책자들이 그리고 높으신 분들이 자꾸 등산 가자고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스포츠보다 오랜 시간 힘든 여정을 함께하고 성취하고 그러는 과정 속에서 교류하는 감정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등산을 가겠냐 물어보신다면 혼자는 결코 가지 않고 누군가와 간다면 갈 거라고 답하겠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이고 새로운 도전이면 그게 두렵고 부담스럽더라도 꾹 참고 도전해 보겠다라고 전하고 싶다. 등산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는 활동이자 정신건강을 맑게 해 주는 하나의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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