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2020젊은작가상 강화길 작가의 음복을 읽고

[아래 글은 2020년 7월 2일에 작성하고 독서모임에서 나눈 독후감입니다.]
[이 독후감은 2020 제 1회 ㄱㅇ독서모임 문집에 실었습니다.]

1. 음복(飮福), 제목에 관하여 읽기 전 본인의 감상


제사상에 올려지는 음식은 흔히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들도 있지만 제사 때만 볼 수 있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저희 집은 제사를 극진히 챙기는 것 같지는 않아서 제사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본가는 대전이고 시골집은 전라도입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찾아가게 되면 접해보지 못한 음식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저의 친할아버지는 18년에 돌아가셨는데 살아생전 햄버거를 챙겨 드리면 어르신들과 사뭇 다르게 햄버거를 즐겨 드시곤 했습니다. 19년 할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와 가족들과 함께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갔을 때 저희 아버지는 햄버거를 사다가 할아버지 산소에 두신 기억이 납니다. 물론 할아버지 몫만 사오신 것은 아니겠죠. 그 기회에 온 가족이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2. 독후감


이 소설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 볼 수 있게 여자, 아내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원한 것은 아마 소설의 시작 부분인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라는 말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 악역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온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고모가 악역이고 아내의 어머니도 악역이었다. 악역, 단어 말 뜻대로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악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역할을 삼았다는 것. 그 말대로 아내의 남편은 고모가 악역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랬기에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 줄 수 없었고 그래서 아내는 첫 만남이었던 고모의 그런 접근이 불편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내는 종교적인 이유와 개인 집안 사정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의 할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시댁에 찾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의 고모를 만났다.

이 집만의 특별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제사 준비에 토마토 고기찜이다. 아내가 시어머니께 물어봤을 때 시어머니는 그 요리를 설명하기 껄끄러워했다. 나름 그것에 대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호전적인 고모는 그마저도 꼬투리를 잡았고 이내 그 화살이 남편에게도 향했다. 그렇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편의 할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리곤 할아버지의 입맛이 달라졌고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지 않고 전쟁 통에 먹었던 음식들을 그리워하며 찾았다. 결국은 그 할아버지의 요구를 시어머니가 만족을 시켰다. 할아버지의 요구에만 맞춰진 토마토 고기찜은 할머니는 만들지 못 하며 같이 즐기지 못 했다. 아니러니 한 점은 그 집에서 토마토 고기찜을 즐겨 먹는 사람은 남편과 할아버지뿐 이였다. 할머니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역할을 고모가 해왔다. 할머니는 고모 밖에 없다며 의지를 많이 했다. 그렇게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고모의 몫이 된 셈이다. 그 역할을 맡았기에 고모는 그 집안에서 호전적이게 된 것이고 그 역할이 누군가 에게는 고모가 악역으로 비춰 질 수 있는 셈이다.

아내의 외갓집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 속에서 악역의 개념을 확증시켜주었다. 아내의 어머니도 외할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 사실이 외삼촌과 멀어지게 했고 그녀는 외삼촌의 아이들에게도 악역으로 비추었다.
여기서 아내와 남편의 큰 차이점은 알고 모르냐 이다. 아무것도 모를 거야 라는 질문에 아내는 모는 것을 알고 있고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아내는 남편의 집안 사정을 쉽게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아내에게 남편이 이 사실을 모르게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 그 부탁을 지키게 되면서 그 집안에서 진짜 악역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것이 남편인 것을 근데 그녀 또한 안다. 그것이 남편의 선택으로 악역이 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라는 말이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남편의 아내처럼 혹은 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처럼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나 또한 남편처럼 토마토 고기찜을 맛있게 먹을 것이며 그 집안에서 무지로 인해 배려 없는 행동들을 자아 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말로 하여금 나를 성찰하게 했다. 그리고 아내가 현명하다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내는 악역이라는 것이 관계 속에서 한정되는 것이라 깨달았을 거다. 남편이 스스로 선택적으로 악역이 된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게 도대체 누구에게 득이 되는 일일까? 고모? 남편? 시어머니? 하지만 또 이렇게 생각이 된다 발설하게 되면 또 누군가에게 역할이 부여된다. 악역이 고쳐 풀어 낼 수 없는 필연인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필연이기에 자연스러움을 받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