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헤르만헤세의 싯타르타를 읽고

1. 읽기 전 제목을 보고 든 생각


중고등학생때의 동창이 생각이 난다. 그 친구는 고씨였다. 윤리시간에 고타마 싯타르타를 배운 뒤 그 친구의 별명이 고타마 싯타르타가 되었다. 싯타르타라는 인물을 들을 때 항상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물론 싯타르타와 그 인물의 상관관계는 없고 성격도 비슷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학창시절 치기어린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이패드 미니 5 기준으로 이 책은 400 페이지가 안되는 짧은 분량을 가지고 있었다. 마스쿤님에게 소개 받을 때 확인 해보았다. 짧지만 쉽지 않겠다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읽기 전 부터 겁을 내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안되는데 말이다. 그래도 저번에 소개해주신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보다는 분량이 짧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새로이 마인드셋을 해서 자신감을 되찾고 독서 해야겠다.

2. 독후감


싯타르타는 집을 떠나 다사다난한 일을 겪으며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었다. 아버지의 품에서 떠나 그 길을 동행자이자 동역자인 고빈다와 함께했다. 붓다 즉 고타마의 뜻을 알게 된 둘은 의견차이를 확인하고 헤어지게 된다. 싯타르타는 그 이후 소위 속세의 길에 빠져들게 되었다. 카마라에게 애욕을 배우고 카마스바미에게 장사를 배웠다. 그 기간동안 싯타르타는 생각하고 기다리고 단식할수 있는 그의 장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정욕과 물욕이 가득차 넘칠 때 그는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죽었다 느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싯타르타는 다시 한 번 그 안락함 속에서 떠나 정처없이 새로운 길을 나서게 된다. 그 길에서 고빈다를 만나 본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고빈다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싯타르타는 그와 대화를 통해 그 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집에서 나와 고빈다와 함께 고행을 하고 싯타르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변화를 자각시켜주는건 고빈다였다. 그 이후 싯타르타는 강가에 도착해 강을 건너고자 할 때 바수데바를 만났다. 싯타르타와 바수데바는 초면이 아니였다. 고빈다와 헤어지고 카마라에게 다가갈 때 싯타르타는 그 때 바수데바를 만났다. 노잣돈이 없던 싯타르타에게 바수데바는 다시 만남을 기약하며 은혜를 베풀어 주었고 결국 세월이 꽤 지나고 나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재회는 싯타르타에게 확실한 깨달음을 주었다. 바수데바는 뱃사공이었고 싯타르타가 원하는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싯타르타는 바수데바와 뱃사공이 되어 강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훗날 카스미가 아들을 데리고 올 때도 그 아들이 싯타르타 곁을 떠나 상실감을 느낄 때도 강이 해답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난 고빈다는 싯타르타의 깨달음을 원했지만 오히려 싯타르타는 고빈다의 요구에 응하지 못했다. 고빈다는 간단하고 명료한 교리를 원했기에 말 따위로는 그 깨달음을 담아 낼 수 없다는 표현을 한 싯타르타가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싯타르타의 삶을 전반적으로 바라본 우리는 그런 표현을 이해 할 수 있겠지만 고빈다는 아니었다.

싯타르타의 생애와 깨달음을 내게 적용할 수는 없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내겐 독서를 적용할수있겠다 싶었다.
우리집 거실 벽 하나는 책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어렸을 때 아빠 엄마가 책을 읽는 것을 본 기억은 없지만 유년시절 책과 친하게 지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플라톤 독서토론 수업부터 중3까지 이어진 독서논술 과외는 소위 이른바 문해력을 함양시켜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 독서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점점 그 정도는 심해져갔다. 이 모습이 내 모습이라 인정하지 않았고 돌아가려는 노력 또한 하지 않았다. 이 모순이 오랫동안 지속이 되었다. 멍청해짐이 포화가 되었을 무렵 그 포화가 원동력이 되어 다시 책을 읽고자 했다. 그 새로운 시작이 작년 첫 장마가 시작한 즈음에 시작한 독서모임이었다.

독서모임으로 과거의 모습으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그 과거의 모습은 독서와 친한 모습이 아니였던 것이다. 단지 책을 잘 읽엇다 평가했던 것이였다. 같이 책을 읽고 나누며 지평을 넓이고 자기 생각을 용기내서 이야기하고 정리하는 시간들은 갖지 않았었다. 단순히 독서활동을 단편적으로 혼자 해왔다. 모임으로 가지게 되는 긍정적 스트레스 또한 없었다. 어쩌면 싯타르타가 속세에 빠져 다시 나왔을 때 속세에 빠지기 전과 그 후가 달랐던 것 처럼 나 또한 달라졌다. 독서를 중단하기 전과 독서를 다시 시작하고 난 후의 나의 모습이 달라졌던 것 처럼. 싯타르타의 행보는 고빈나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끝나지만 나의 독서활동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게될지 궁금해진다. 다시 독서를 중단하고 싶지 않다. 중단하더라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