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인문학/독후감

결혼을 앞둔 나에게 이어령 선생을 통한 나의 신앙 점검기 『이어령 - 지성에서 영성으로』

소한초이 2025. 2. 1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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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상 깊은 구절

 
죄를 용서하고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관용에서 나오고 그 관용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모든 문화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며 그 죽음이지요. 부활의 죽음 말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사랑 말입니다. 그것만이 개체를 초월할 수 있는 진정한 글로벌리즘globalism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 밀리의 서재
 
기독교원리는 우선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버리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마침내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버리셨지요. 그래서 십자가는 버림의 극한이고 그 극한을 통해서 예수님은 부활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버리는 것이 바로 얻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적과 구원의 의미이고 죄를 버려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 밀리의 서재
 
의문은 지성을 낳지만, 믿음은 영성을 낳습니다. 지성과 영성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의심 속에서, 끝없는 의문 속에서 지성은 커집니다. 하지만 사람 집에 집을 짓고 살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 그러한 짐승들의 슬기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제비처럼 믿어야만 인간의 힘을 빌려 다른 짐승들의 위협에서도 보호를 받고 편안하게 살 보금자리를 얻어 새끼들을 안심하고 키웁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 밀리의 서재
 
니체나 카뮈에 매료되어 허무주의, 실존주의,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거침없이 성서를 비판했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 밀리의 서재
 

 

2. 독후감

 
이어령 선생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되었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이어령 선생의 신앙고백이 담겨있었다. 니체나 카뮈에 매료되었다는 그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소개해주고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내용은 교토에서의 근무와 딸의 실명위기 등등, 인생에서 끝없는 고민과 당면한 자녀의 건강문제와 외손주의 죽음이 이어령 선생을 하나님 곁으로 인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성은 문화인지고 문학인인 이어령 선생의 모습에서 어떤 계기로 영성의 영역으로 흘러갔는지 그 점을 잘 살펴보면 좋은 간증거리로 삼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어떤 점을 느끼게 되었는지 고백할까 한다.

3년 장거리 연애, 인고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여자친구 입에서 결혼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식장 계약을 했다. 보통의 결혼 절차라고 하면 상견례 자리에서 으레 결혼식 날짜를 잡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절차를 생략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최소한 나는 부모님과 결혼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3년 동안 말이다. 여자친구가 이번에도 주저하게 된다면 나의 결혼은 무기한 연기가 되고 여자친구가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복귀하는 26년에 결혼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조급하다면 조급한 마음으로 절차를 생략하고 감행을 했다.

평소에 나는 부모님에게 현대의 결혼식은 허례허식이고 축의금은 과소비를 부추기고 사회적 품앗이라고 의견을 내세웠다. 다 갖춰서 결혼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세태를 비판하고 무엇이 삶에서 중요하고 무엇을 품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항상 이야기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나의 부모님은 “그래 네 알아서 해라”라는 답을 하곤 하셨다. 내가 부모님을 잘 설득했 다기 보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계셨다.

부모님과 여자친구의 첫 만남에서도 어떻게 하면 이들의 관계를 불편하지 않게 하면서 점진적으로 친밀감을 쌓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고안한 생각은 “짧고 여러 번 만나자”였다. 더불어 장소 선정도 중요했다. 서로 편할 수 있는 곳으로 부모님이 걸어서 1분 거리의 카페 그리고 헤어질 때 동선이 다를 수 있게 해서 최대한 불편한 요소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부모님께 선물을 챙겨가야 되냐는 질문과 떨린다는 여자친구의 말에 나는 필요 없고 앞으로 살면서 잘 챙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는 독립된 가정이기 때문에 절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기죽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다행히 기획의도와 딱 맞게 30분 이내로 파했고 성공적인 첫 만남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자친구 부모님 쪽에서 터지고 말았다. 여자친구 부모님은 어떻게 절차도 밟지 않고 예의를 지키지 않냐고 노하셨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물론 이 나라 이 땅에서의 결혼식 진행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결혼을 염두한 교제라는 것을 여자친구를 통해서 알고 계실 줄 알았다. 내 여자친구가 나와 마찬가지로 시시콜콜 나와의 관계를 이야기해서 소식을 업데이트할 줄 알았다. 내 여자친구가 나와 같을 거라는 생각은 정말 오판이었다. 여자친구는 부모님과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았고 속속들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친구 부모님은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니 여자친구 부모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통보라고 생각이 드셨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여자친구 부모님을 뵙는다. 교회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불성 하게 하는 바람에 나는 졸지에 인사도 똑바로 안 하더니 이런 중요한 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평소에 가족과 대화를 잘 안 하는 여자친구의 탓이 크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부모님의 관계가 막역하지 않아 소통이 잘 안 된 탓에 장거리연애라는 특수성과 결혼을 함께 보지 못 한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비난의 화살이 나로 가있는 것이 억울했고 답답했다.
 
긴급히 늦게라도 여자친구 부모님을 뵙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오고 갈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안 봐도 훤 했다. 평소에 행해지는 모습과 인사불성과 절차 없이 결혼을 진행하려는 것을 언급하실 것이 예상이 된다. 물론 전통적인 관점에서 응당 결혼한다고 하면 여자 쪽 부모님을 먼저 뵙고 결혼 허락을 득하고 상견례 자리에서 결혼식 날짜를 잡는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복하고 설명을 드려야 할까 너무 고민이 되었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내 고집만 커지고 향후 장인, 장모님이 되실 분들의 고지식한 부분들만 크게 부각해서 상상하게 되었다. 네이버에 장서갈등을 검색해 봤다. 많은 내용들이 나왔다. 요즘에는 고부갈등보다는 장서갈등이 많다고 한다. 앞으로 장인, 장모님이 우리 가정을 얼마나 어떻게 어디까지 내정간섭을 할지 걱정이 되면서 고민이 점점 더 커 저만 갔다.
 
그 고민을 하는 와중에 이 책을 다시 한번 곱씹어 읽게 되었고 내려놓음과 예수님의 십자가 지시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어령 선생이 한 말처럼 기독교가 모든 것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일 텐데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고 부활의 죽음이라고 했다. 나는 왜 예수님과 닮기를 원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걸까? 내가 이 세상에서 멋지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저버리지 않고 내 옛 습관과 생각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니 모든 게 다시 정렬되는 느낌이었다.
 
평소에 나는 결혼식이라는 것이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결혼도 두 개인이 만나 결혼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혼주가 부모님이 되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었다. 어떻게 결혼의 주체와 주인이 나와 여자친구가 아니고 부모님이 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은 다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율법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했다. 결혼식도 마찬가지로 그와 파생된 것들로 하여금 축하받고 행복해야 할 결혼이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았다. 누구는 축의금 때문에 낙심하고 누구는 예물 예단으로 낙심하는 상황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하지만 파생되는 것들이 본질이 아닌데도 거기에만 너무 몰두하고 심취해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애초에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축의금의 시작과 본질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알게 되면 그 취지에 맞게 변형하면 되는 것이다. 축의금을 없애는 것보다 그 방법이 더 지혜로울 것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그래서 곧 예비 장인, 장모님을 만나게 될 텐데 이 책을 읽고 만나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전에는 분해서 씩씩대고 답답해했다면 지금은 한 번 더 예수님을 따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혹시 장인, 장모님이 화내시거나 혼내시더라도 거기에 맞서지 말고 납작 엎드려 죽어보자. 예수님 또한 어처구니없이 십자가 형에 죽지 않았는가. 그 사랑이 뭔지 한 번 맛보게 될 테니 기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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