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인문학/독후감

불혹을 향한 나의 철학적 여정 『강용수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소한초이 2025. 2. 27. 21:42
반응형

1. 책을 읽기 전에 감상

 
마흔에 읽는 니체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시리즈이고 쇼펜하우어도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고른 봄터님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니체가 아니라 쇼펜하우어를 골랐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마흔에 읽는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직 불혹의 나이에 다가가려면 한참 남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다보면 그 나이가 순식간에 다가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나의 모습과 나의 생각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반대로 10대와 20대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제대로 성장했을까?
 

 

2.독후감

 
책을 읽고 있는 중에 큰일이 벌어졌다. 임대차계약에서 새로운 임차인이 대출을 진행하지 않아 잔금일날 전세금을 입금하지 못했다. 연쇄작용으로 기존의 임차인이 전세금을 반환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온전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는 중이다. 상황은 매일매일 변했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의 가치관과 정체성 그리고 나의 욕심이 무엇인지 떠올리기에 이 책이 충분한 기폭작용을 해주었다.
 
이 책에서 나는 뚜렷한 주관, 타인의 영향, 또래 압력이 더 관심이 갔다.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강조하는 독서와 사색 또한 쉽게 눈길이 갔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큰 동력 중 하나는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 이것을 자극시켜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마케팅이다. 물론 광고의 순기능이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정보의 호수에 우리는 익사하기 직전이라 생각한다. 내가 필요하지 않은데 타인의 시선과 또래 압력으로 원하게 되는 상황은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구매했던 수 많은 물건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하나의 행동이 나의 시선을 내 자신으로 향하게 하는데에 반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가 내 머리 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경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소한 일상들이 우리의 행복들을 갉아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 내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충분한 탐구가 필요하다.
 
 


 
 
최근 결혼 날짜와 결혼식장 계약을 말씀드리기 위해 미래 장인 장모님을 뵀다. 매주 한 번 보는 사이지만 단 한 번도 대화라고 할 수 있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때 나눈 대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예의, 행복과 돈이었다. 또한 나의 인사성에 대한 문제는 여자친구를 통해서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인사불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다. 
 
이번 최초의 대화 이후 그분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조급함이 들었다. 단 30분의 대화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피력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시간이었다. 대화 내내 횡설수설한 것 같아 너무나도 아쉬웠다.  조급함이 넘어서 인정욕구로 비치기 시작했다. 미래의 장인어른은 “행복할 수 있냐?”와 “금전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이 두 가지가 가장 내 마음속에 가장 거슬렸다. “네! 아버님의 딸을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걱정마십쇼! 돈 많이 모아두었습니다!”라고 말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마음속에는 행복과 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들어왔고 쉽게 단언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미래의 장인어른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장인어른이 생각하는 예의와 행복과 잘 사는 것의 기준을 맞추어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멋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번듯한 사람인데 그것을 못 알아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인정욕구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벌 일 수 있고 나 답지 않은 모습과 행동을 범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호흡과 흐름을 무시하고 부자연스러운 행보가 진행 될 수 도 있다. 갑자기 투자를 감행하거나평소에 관심도 없던 것을 소비하던가 그런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어떤 것에 혹하는 사람이 되겠다 싶었다.
 
 


 
 
다시 최근 진행 중인 임대차계약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새로운 임차인이 대출 문제로 인해 전세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거두절미하고 기존 임차인과 나는 십분 배려해서 새로운 임차인이 순조롭게 입주할 수 있게 했다. 기존 임차인은 금전적 손실을 보고 있고 나는 전세금 반환의무를 충분히 이행하고 있지 않고 있다. 기존의 임차인의 소요된 비용을 보전한다는 특약사항을 넣어 계약을 파기하지 않고 그대로 재계약을 해주었다.
 
재계약을 하고 나서 새로운 임차인은 잔금일 전에 이삿짐을 미리 넣을 수 없냐고 요청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요구를 하루종일 고민했다. 사람 한 번 살린다는 심정으로 또 한 번 배려를 해줄까 싶었고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없으면 굳이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잔금일에 또다시 기망할 여지를 감안할 수 없었고 이삿짐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부분점유이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서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길래 새로운 임차인의 요구를 고민해 봤을까?
 
아무래도 사람을 위해서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인정이 있는 세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마치 기존 임차인이 전세금을 반환받아야 되는데 기다려주는 배려처럼 말이다. 새로운 임차인의 딱한 사정을 들어주어 사람 하나 살리면 어떠할까? 설령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 할지라도 세상 살아가면서 손해 보고 살면 안 되나? 이 세상에서 호구로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임차인의 안위를 걱정했다.
 
결국에는 새로운 임차인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기로 확답했다. 이 요구는 나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존 임차인의 문제 즉 전세금 반환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대두된 문제는 나는 왜 기존 임차인 보다 새로운 임차인을 살폈을까? 선함을 행하고 싶으면 내가 대출을 받아 즉시 전세금을 반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끝까지 기다릴 수 있을 만큼 기다리고 다른 수가 없을 때 내가 대출받는 것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다. 임대인인 나의 입장에서 금융손실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부모님에게 재산을 상속받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철학적 탐구를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대학에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관리를 잘해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임대차계약으로 돌아가서 그 금융손실이라는 욕심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선행의 방향이 왜곡되고 말았다. 또한 임대인의 지위 또한 그 한몫했다.
 
이 세상에서 호구로 살면 왜 안되냐는 가치관과 왜곡된 선행은 별개로 바라봐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은 굳건한 주관이다. 존경하는 아버지와 목사님과의 통화로 이 고민을 상담받고 결정했지만 만약 여기서 장인어른이 나타나 “선행을 베풀라” 또는 “계약서대로 해라”라고 조언하셨다면 나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그의 의견에 따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쇼펜하우어는 이런 것들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서는 단순히 타인의 사상과 생각을 듣고 받아들이는 간접적인 경험이라고만 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읽었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중요하다고 이야기했고 곱씹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 다했다. 생각과 사색 없이 책을 읽고 받아들인다면 대신 생각해 준 작가의 생각을 그저 주입한 것밖에 안된다. 앞서 훗날 장인어른이 말씀하신 행복과 돈 또한 나는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하는 그 길을 잘 걸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행복에 대한 핵심은 결핍이라는 것을 성경을 시작으로 <알렝 드 보통>을 통해 알아가고 있고 돈에 대한 생각은 <에리히 프롬>으로 시작하여 <요한 하리>로 다져지고 있다.
 
부단히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다행히도 독서모임을 즐기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불혹 경지로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결단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무수히 거쳐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이 세상에서 우뚝 서고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