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독서모임 커넥트 Book-Log] 24.06.02 올리버 색스 모자를 아내로 착각한 남자

1. 독서모임 후기 프롤로그

 
칼린다님의 개인적인 일정 변화로 인해서 독서모임 날짜를 조정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금토일 중에 하루 날짜 잡아서 독서모임하자고 하셨습니다. 일전에 이런 내용을 이야기 나눈 적 있습니다. 월화 중에 독서모임을 하고 불발 시 그 주 일요일에 독서모임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루 앞 당겨 자연스럽게 일요일에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일요일에 독서모임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일요일 저녁이 가장 평안한 시간이었는데 다행입니다. 

 

@21montly


 

2. 독서모임 후기 

2-1. 독서모임 시작과 책 선정배경

평소가 아닌 주말에 독서모임 한 것이라 기분이 멜랑꼴리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이스브레이킹을 먼저 하고 책 이야기를 나누는데 반면 이번에는 거꾸로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근황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테마를 정해서 책을 선정하고 그 포맷을 제의해주신 데이나님의 의견 따라 첫 번째 테마는 <비문학>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다음 저의 순서로 그 테마는 <알마출판사>로 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데이나님을 처음 뵈었을 때 데이나님이 말씀해 주신 책들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었습니다. 그중 호프 자런의 <랩걸(Lab Girl)>을 읽었었습니다. 그때 알마출판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독립서점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저 또한 독립서점 창업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세 출판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마출판사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자 이번 테마를 이렇게 정해봤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똘끼로 흔하지 않은 테마를 정해봐야지 라는 심리도 반영이 되었습니다. 
 

2-2. 독후감

 
제가 준비해 온 발제문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이님과 데이나님은 발제문을 보고 갸우뚱해진 부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병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흔한 편견을 바라보는, 의도성을 가진 발제문이었어도 책에서 나오는 정신병적인 행동들과 지적장애 같은 부분들을 위해서는 새롭게 정의해봐야 하고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선 병과 장애를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병은 치료 대상이 되지만 장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 상태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는 게 됩니다. 병은 어떠한 치료를 통해서 그전의 상태로 회복하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반면에 장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증상을 호전시켜 줄 치료를 할 수 있어도 그 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런 차이를 먼저 인식하고 정신병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렇게 봤을 때 우울증은 장애가 아니라 병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외상이나 어떠한 이유로 피해를 입어 장애를 얻어 우울한 상태를 얻게 된다면 또 그것은 다르게 다뤄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준비했던 발제문 중 천재와 정신병자의 차이를 묻는 질문은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천재가 정신병을 앓을 수도 있어 둘 다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롭게 우리가 배웠듯이 단어를 바꾸어 지적장애와 천재를 비교해 보거나 그런 식으로 접근해 보면 좀 더 쉽게 답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3개월 전 독서모임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를 읽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인 시라토리씨는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때에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나 그분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라고 우리가 쉽게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행동이 오히려 실례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적장애를 비롯한 여러 장애를 두고서도 감히 정상이라고 일컫는 우리가 시혜적인 태도로 장애인들에게 대하는 모습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라토리씨의 인생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선행 학습을 해서 그런지 정신적 또는 신경학적인 문제를 두고 더 깊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신병자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집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을 이 사회에서 더불어 같이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유토피아적인 이야기를 나열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회적 모델이 좋겠냐 등등 말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하는 이런 대화는 그저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거나 형제가 있거나 하면 그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당장 나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으니 맘 편하게 이상적인 생각만 품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선민의식으로 적선하듯이 이상을 외치는 태도는 실제 그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 분들에게 결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지만 어느 정도 중간을 찾는 노력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고 교화 대상자로 생각해야되는지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가진 환자는 자신의 병세를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자기가 그 고통 속에 있는지도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뚜렛 증후군 같은 경우에는 본인 스스로 틱이나 그런 발작 같은 증상을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과연 타인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환자를 치료를 시키고 돌봐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숫자에 능통하고 소수에 집착적인 쌍둥이 에피소드나 신경매독 걸린 할머니 에피소드, 시인 리베카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약물치료를 통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누리고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에피소드였습니다. 그렇기에 과연 이들에게 치료약물을 투여하고 관찰하는 게 맞는 걸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가만히 냅누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결정을 유보해서 책임감을 회피하려는 것이지 그들을 정녕 위한 처사는 아니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로 그 어둠 속에서 꺼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너무 이상만 꿈꾸다가 끝나버릴 이야기가 감사하게도 좋은 방면으로 마무리가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더 나아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으신 믿음님이 정신이 영혼의 영역이냐 육체(뇌)의 영역이냐를 두고 이야기 나눌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분명 진영을 선택하면 정신이라는 것이 어떻게 개념화될지 구분이 되니 말입니다. 또한 조이님은 또 다른 차원에서 영혼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셨으며 정신병자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이니 사회적으로 용어를 바꿔야 되지 않을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시며 조이님이 길치인 부분을 고백해 주시면서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또한 조이님이 모두 다 사회에서 잘 살려고 손을 내밀고 하는 것일 텐데 도와주는 사람의 인식개선으로 지체 또는 지적장애인 분들이 이 사회에서 어떠한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아니라 기여자로 참여하게끔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극단적인 효과를 얻어고자 약을 먹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행태에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믿음님의 흡연기를 들어보면서 그림 그릴 때 각성제의 효과가 무시 못할 정도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갈무리를 했습니다. 데이나님은 17년인가 18년에 사시고 이번에 다시 읽어보는 2회독째였습니다. 아마 그때 이 책이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에도 올라가고 유튜브나 매스컴에서도 노출이 되었다고 회상하셨습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저희와 비슷하게 생소한 개념으로 어렵게 읽었지만 두번째에서는 보다 쉽게 읽혔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환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인간다움을 살펴보는 그런 의사에 대한 태도를 다시 느낄 수 있다고 회고해 주셨습니다. 칼린다님은 삶의 태도에 더 접근해서 그 사람들도 똑같은 사람이었구나 느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삶과 결부시켜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조이님께서는 이 책에서 나오는 병들이 나 또한 걸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책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품었다고 했습니다. 목차 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조이님은 차리리 뒷부분에 배치된 <단순함의 세계>가 앞에 배치되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앞부분은 재미없고 어렵기만 했다고 첨언하면서 말입니다.
 
 

3. 독서모임 후기 에필로그

 
독서모임을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사회자의 역할과 발제문은 중요합니다. 오늘 사회를 맡고 발제문을 낸 저는 오늘의 모임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부채감을 느꼈습니다. 질문의 질이 너무 낮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멤버분들이 어려운 책이어서 그렇다 위로를 해주셨습니다만 나름대로 독서모임 경력도 있는데 이런 모습들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서모임을 잘 통제하려는 욕구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통제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중용이 중요한데 말입니다. 
 
또 성숙하지 못 한 모습들을 고백하자면 발제문에 대한 지적과 문제제기가 메신저에 대한 지적으로 느껴질 때였습니다. 저의 발제문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편견 가득하고 가치중립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올바르게 수정해 주고 지적해 줄 때 든 감정은 다행 또는 감사가 아니라 호전적이었습니다. 변명처럼 부연설명을 했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의 메시지를 지적받은 경험이 없어서 그런 감정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반성하며 좀 더 좋은 메시지를 많들어야겠다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독서모임에서 가장 주의하는 두 가지는 적막 그리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입니다. 이번 독서모임에서는 그 두 가지가 되게 많이 흘러갔습니다. 발제문도 애매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로 끌고 가야 할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장이 킷대를 놓친 느낌이었습니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모습을 다독여주는 멤버들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독서모임의 발제문을 부끄럽지만 에필로그에 담아두고 독서모임을 후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광양독서모임 커넥트의 소한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발제문 -
1. 내가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천재와 정신병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3. 현대의 의약품을 얼마나 어떻게 신뢰할수있는가?
+ 4. 그들을 치료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