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인문학/독후감

"기후위기가 삶에 스며드는 방식" 『김기창 -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소한초이 2025. 3. 30. 10:16
반응형
 

1. 독후감

 

돔시티 시대에서 몰디브로 여행가고 싶은 한 부부의 이야기까지,

책의 진행은 먼 미래에서부터 가까운 미래 혹은 현재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을 읽어내려 가면서 점점 현시점으로 다가오는 것이 마치 숨통을 조여오는 듯 느껴졌다.

해수면 상승으로 더 이상 몰디브를 갈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돔시티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눈치채지 못 하게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이 반영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이야기는 『1순위의 세계』다.

우석과 희연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후위기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한 사람은 현장에서, 한 사람은 정책과 제도 안에서 움직였다.

그들의 마음엔 분명 사명감이 있었고, 진심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끝은 이혼이었다.

기후위기에 한 발짝 나아간 대가로

자신들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거리까지 벌어져 있었다.

그들이 정말 아니면 안 되는 일이었을까?

그들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대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도록 마음 한켠이 좀 먹먹했다.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에서 다니엘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돔시티 잠입 중에 놓쳐버린 고양이 ‘시리’를 구하러 굴로 다시 들어간다.

민병대에게 발각될 수도 있고, 굴이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끝내 시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선택이다.

하지만 다니엘라에게 고양이는 그저 ‘동물’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온 가족이자, 놓을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기후위기라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도

결국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이라는 걸 다시 떠올리게 했다.

 

『갈매기 그리고 유령과 함께한 하루』에서 요셉은 돔시티라는 안정된 세상에 남는다.

그의 연인은 추방자들의 편에 서서 저항하다 끝내 추방당한다.

요셉은 끝까지 그녀의 곁에 서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그 선택이 과연 잘못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돔시티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옳았을까?

아니면 그 자리에 남아 자신만의 방식을 고민해보는 것도 사랑일 수 있었을까?

사랑과 생존, 책임과 양심 사이에서

누가 옳고 그르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천국의 초저녁』에서 경민과 은주는 2차 신혼여행을 두고 몰디브를 놓고 논쟁한다.

경민은 기후변화를 이유로 ‘몰디브가 사라지기 전에’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주는 같은 이유로 ‘가지 말자’고 말한다.

기후위기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여행을 포기하자고 하는 것이다.

경민은 기후위기를 몰디브로 떠나야 할 이유로 삼고,

은주는 같은 기후위기를 여행을 멈춰야 할 이유로 받아들인다.

결국 이 에피소드는 기후위기가 이제 삶의 아주 일상적인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도 모르게 이미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기후위기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하이피어 프로젝트』에서는 같은 목표를 가진 두 인물, 소피와 피버가 등장한다.

소피는 강경한 방식으로 돔시티를 압박하려 하고,

피버는 조용히 굴을 파며 접근하는 온건파다.

추방자들의 삶을 돔시티로 확장시키기 위한 목적은 같지만,

그 방법의 차이로 갈등이 생긴다.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그 갈등은 돔시티에게 더 유리한 상황이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공동체 안에서도 얼마나 자주

목표는 같지만 방식이 달라 충돌하고 본질을 놓치는지를 떠올리게 됐다.

우리는 서로 다른 속도, 다른 입장을 갖고 있더라도

대화를 통해 조율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은 기후위기를 거창한 담론이 아닌

관계, 선택, 감정, 일상 안에서 차근차근 펼쳐 보인다.

기후위기를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었다.

 

 


 

2. 발제문

 

1. 가장 인상 깊은 단편은 무엇인가요?

2.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적인 결정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

3.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천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다면, 그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4. 공동의 목표가 있는데도 갈등이 생긴다면, 무엇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걸까요?

 


✅ 발제문 1

 

Q. 가장 인상 깊은 단편은 무엇인가요?

 

 

📝 답변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1순위의 세계』였다.

 

우석과 희연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다.

우석은 울산에서 현장에서 직접 움직였고,

희연은 여의도에서 법제화와 정책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의 선택에는 분명 사명감과 진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전방위적으로 헌신한 끝이 ‘이혼’이라는 결말이었다는 점이

읽는 내내 허무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개인의 행복과 안녕이 당장 무너진 상황에서

그들이 지키려 했던 ‘더 나은 미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맡은 일이 정말 그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정말 단 두 사람만이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분명 누군가가 대신할 수도 있었고,

그들 역시 한 발 물러나 서로를 돌아볼 시간쯤은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궁핍함도 참고, 관계의 균열도 견디며

후세를 위해 묵묵히 해낸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도 없었고, 부부 관계도 결국 끝나버렸다.

그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걸고 그 일을 해낸 걸까.

그리고 과연 무엇이 남았을까.

 

열심히 일한 끝에 기후위기 대응엔 한 발 나아갔을지 몰라도,

정작 자기 삶은 무너져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그랬다.

그래서 이 단편이 오래 남는다.

 

 

발제문 2

 

Q. 당신의 일상에서 기후위기가 영향을 끼쳤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답변

 

최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 뉴스를 접했다.

시간당 8.2km로 확산됐다고 하는데, 이는 역대 가장 빠른 속도라고 했다.

과거 강원 속초·고성 산불의 속도가 5.2km였다는 걸 감안하면,

이번 산불이 얼마나 빠르고 통제 불가능했는지 실감이 났다.

 

캘리포니아나 호주처럼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서

큰 산불이 났다는 소식은 예전부터 종종 접해왔다.

그럴 때마다 ‘요즘은 한번 산불이 나면 정말 대형으로 번지는구나’라는 생각만 했지,

기후위기와 직접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2019년 강원 산불도 지리적으로 멀게 느껴졌고,

그만큼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불이 산청까지 내려오고,

지리산 중산리 코앞까지 확산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광양에 사는 나로서도 바로 옆 지역까지 위협이 다가온 느낌이었다.

외갓집이 있는 경북 구미도 멀지 않아,

이게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최근 유튜브 <타일러 볼까요?> 라이브 방송에서

타일러가 산불과 기후변화를 연결지어 간단히 언급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 산불도 기후위기의 한 단면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산불은 기후위기가 내 삶 가까이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감정적으로 느끼게 만든 순간이었다.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불안과 걱정이 현실처럼 다가왔던 경험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발제문 3

 

Q.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천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다면, 그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답변

 

우석과 희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우리 부모 세대가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는 ‘한 가정을 일으킨다’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무게를 밖으로 던져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정 안에서 다정하고 온화한 남편, 아버지라기보다는

책임감 있고 경제적으로 든든한 가장으로 존재하길 강요받았다.

가족을 위한 일이었지만,

결국 그 ‘가족’과의 관계는 자주 소외되었다.

 

우석과 희연도 비슷해 보였다.

두 사람 다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각자의 자리에서 진심으로 헌신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너무 열심히 달리다 보니,

서로의 온기를 느낄 시간은 줄어들었고,

결국 관계는 멀어져버렸다.

 

이 상황을 쉽게 옳다, 그르다 말하긴 어렵다.

두 사람이 게을렀던 것도 아니고, 서로를 외면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잘 살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맞이하자’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선택들이었기에 더 아이러니하다.

 

기성세대가 가족의 유복함을 바랐던 진심으로 일을 했지만

결국 가정이 화목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석과 희연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다

정작 자신들의 관계는 놓쳐버린 것이다.

 

주말부부 같은 형태가 되었더라도,

개인 시간을 조금 줄이고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 긴 여정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면

그들도 결국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맞이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발제문 4

 

Q. 공동의 목표가 있는데도 갈등이 생긴다면, 무엇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걸까요?

 

📝 답변

 

공동의 목표가 있다고 해서 갈등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일수록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의 차이는 더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서로 같은 걸 바라본다고 착각한 채,

속도, 방식,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상황이 꼭 등산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정상에 도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누군가는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에 의미를 두고,

또 누군가는 그저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걷는 걸 좋아한다.

이들이 한 팀을 이루어 함께 등반한다면

서로의 속도나 목적이 달라 충돌이 생기기 쉽다.

 

하지만 그들 모두에겐 ‘등산을 좋아한다’는 아주 작은 공통점이 있다.

그 약한 공통점만으로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생기는 갈등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이피어 프로젝트』 속 소피와 피버도

결국 같은 염원을 갖고 있었다.

추방자들도 돔시티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소피는 공격적인 방식을 택했고,

피버는 굴을 파는 방식으로 계속 접근했다.

행동은 너무 달랐고, 서로의 방식은 서로를 위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바랐던 것이 같았다면,

결국 더 많은 대화와 조율의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안다.

사람이 많은 공동체에서,

그리고 이걸 사회나 국가 단위로 확대했을 때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르고, 대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포기하는 문화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국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라도,

다름을 대화로 풀어가는 성숙한 태도와 문화가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실천 중 하나일지 모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