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책 내용을 읽은 것과 다르게 이번 기회로 솔직한 나의 정치흐름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2009년 어느 날 토요일, 한국사 시험을 치르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구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야,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대.”중2였던 나는 쉽게 믿지 못하였고, 낙산사 화재, 숭례문 화재 다음으로 큰 충격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 생에 처음으로 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정동영과 이명박이 대선에 붙어서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명맥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 개탄스러웠다. 이명박 대통령을 좋게 평가하는 친구들에게는“어떻게 우리 같은 사람이 가진 자에게 편을 드냐?”라고 비판했다. 사실은 그 친구가 우리 집보다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때문에 시기 질투했지만, 그때 나는 ‘역시 좀 살면 이명박 같은 사람들에게 투표를 하는구나’라고 단정지었다.
어느 봄날, 수업 중 배가 너무 아파서 1층에 있는 양호실을 찾았다. ‘착한 어린이 컴플렉스’ 때문에 양호실은 질 나쁜 아이만 가는 것이라 생각한 나는 양호실 문을 여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다. 용기를 내서 문을 여니, 양호 선생님은 뭔가를 보고 엉엉 울고 있었다. 컴퓨터 속 화면은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사진과 내용들이었다. 양호 선생님은 본인의 애도가 방해된 것이 못마땅했는지 나를 꾀병 취급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양호 선생님은 내 증상이 어떠한지, 괜찮은지 충분히 돌봐주시지 않았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다고 펑펑 우는 그 선생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을 때 국가 원수가 죽어 나라가 망했다고 슬피 우는 그런 어르신들의 우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 양호 선생님도 어쩌면 그들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양면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고 나서, 고인에 대한 모독이 인터넷, 특히 일베에서 주로 많이 이루어졌다. 일베에서는 하나의 놀이감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이용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그림과 더불어 더 이상한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이들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분위기였고, 학교 안에서도 ‘베충이’는 악질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어느 정도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스타 유즈맵으로 이명박 뽑기, 플래시 게임 ‘이명박 키우기’, ‘광우병 어쩌구 게임’ 등을 즐겼고, 이는 그 당시 유행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그냥 ‘쥐박이’라고 불러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다들 쥐박이, 쥐박이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을 가지고 노는 건 괜찮고, 노무현 대통령은 안 된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풍자와 희화화인데 왜 한쪽은 관대하고, 한쪽은 엄격한지 의문이었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와 문재인이 경합했다. 결과는 박근혜의 승리였다. 사회문화 교과 시간에 운 좋게도, “어떻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겠냐”며 교탁 앞에 서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보수 성향을 가진 친구들은 별로 없었지만, 가끔 그들과 대화할 때면 “어떻게 젊은 사람이 심장이 죽어서 되겠느냐”며 혼내곤 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친구들에게는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어떻게 아무런 생각도 없냐”고 질책했다. 18대 대선 개표일, 저녁 늦게까지 개표 방송을 봤다. 단일화 타이밍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꽤나 의미 있는 경쟁이었다. 결국 박근혜가 51.55%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정동영이라는 인물이 너무 약했다고 생각해서 그냥 아쉽게만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그럴까?’ 근심이 되었다. 그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 꽤나 공부 잘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 친구를 보면서, ‘그 친구 부모님도 역시 가진 자니까 그런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분을 삼켰다.
대입 실패는 나의 모든 열정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나보다 시대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들은 다 좋은 대학을 갔다. 친구들은 나에게 공부를 잘할 것 같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나는 단지 사회에 관심이 많은 것뿐이지 공부를 잘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나도 남 부럽지 않은 대학에 가서, 기성세대들이 품었던 그 민주화 운동처럼 사회 변혁에 일조하고 싶었다. 내가 상상했던 대학은 지식의 상아탑이자 사회운동의 발판이었다. 그런데 그 시작부터 꼬여버렸으니, 나는 큰 상실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1년하고도 몇 개월, 이 기간은 ‘잃어버린 10여 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은 ‘굳이 정치에 관심 가져봤자 무슨 소용이겠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 사이 나는 투표권이 생겼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대선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정치에 관심 없었던 것이 괜찮았다며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대선은 그전의 나와 달랐다.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직장 내에서 기성세대들과의 갈등이 심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나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말하는 “개저씨”들이 싫었다. 코로나19 시기도 겹쳐 그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그들이 지지하는 이재명 대표가 이유 없이 싫었다. 마침 그 감정과 맞물려 유튜브 숏폼이나 영상에서는 네거티브 영상 자료들이 넘쳐났고, 나는 그 영향도 많이 받았다. 회사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유튜브와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선전에 물들어 그냥 민주당이 싫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민주당을 뽑는 이 지역사회도 싫어졌다. ‘차악을 선택한다’고 했던 그때 결정은 또 한 번 대통령이 탄핵된 이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고 기형적으로 변한 나의 권리 행사를 올바르게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보다 더 선전은 심해지고, 개인은 극단화되는 이 시대에 더불어 살아가려면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따뜻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우리 어른들이 정치 주제에 대해 논할 때 너무 미성숙하다고 느꼈다. 외갓집은 경북이고, 친가는 전남이라 그 미묘한 간극은 잘 알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전남 광양이라 그런지 몰라도, 대부분의 성향은 민주당이고 그쪽 목소리가 크다. 가끔 반대 진영의 정치 성향을 띤 과장님이 있으면, 그 과장님은 한낱 놀이감이 되어 바보 취급을 당한다. 그 과장님도 어엿한 사람이라 참지 못할 때는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참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과연 내가 근무지가 포항으로 배치되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많이 해본다. 정반대 성향의 분위기 속에 놓였을 테고, 결국 그 상상의 끝은 항상 “개저씨들의 반대에 서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는 자연스레 아버지의 정치 성향을 많이 따랐고, 회사생활을 하게 되면서 기성세대들이 싫어져 그들과 함께하기 싫었다. 이 점만 보더라도 나는 올바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어떠한 논리적인 생각 없이 그저 느낌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이 시각은 자칫 잘못하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처럼, 전체주의 안에서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인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에서 100토론에 패널로 자주 나오는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게 되어서 좋았음에도, 한편으로는 10여 년 동안 정치에 관심 없던 내가 과연 이 책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독서모임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종교와 정치 주제가 나올 수 있다. 몇 달 전 종교 서적이 선정되었고, 이제 정치도 나왔다. 종교 서적이 선정되었을 때도 ‘올 게 왔구나’라는 심정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같은 마음이다. 덕분에 나의 정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앞으로는 과거보다는 좀 더 생각하면서 정치를 바라보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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