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고

1. 제목에 관하여 읽기 전 본인의 감상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별 앞에 붙은 수식어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세 개의 수식어 중 세상에서와 가장은 아름다운을 수식해주었고 아름다운은 이별을 수식해주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이별로 담백하게 제목을 여과시켜볼 수 있다. 그런데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게 있을까? 연인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할아버지의 돌아가심 이런 것들이 아름다운으로 수식될 수 있을까? 나의 경험을 떠올리자면 아름다운 이별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이별이든 그 이별은 당장의 아픔과 괴로움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시간과 함께 아픔이 무뎌지거나 사라지면서 그 정도면 괜찮은 이별이었다. 그리고 좋은 경험이고 좋은 이별이었다, 내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이라 평가했다. 그런 경험들만 가졌기에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말 표현보다 이별은 아름다워진다가 더 적절해 보인다. 과연 이 책에서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동감 있는 아름다운 이별을 알려줄 수 있을까? 제목에 걸맞은 뻔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길 바라면서 기대를 해 본다.

2. 독후감

군생활의 낙 중 하나로 나이에 걸맞지 않지만 건강프로그램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 EBS의 명의 3.0을 즐겨봤었는데 그 날 따라 유독 생식기 질환 편이 재미있었다. 특히 여성 생식기인 자궁편을 유심히 봤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생식기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중년이 되면 그 확률이 급격하게 올라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에서 나온 환자들은 젊은 여성도 꽤 있었다. 빈뇨증으로 때문에 고생하는 여성, 허리가 아파서 오는 여성 등 다 통증은 자궁에서 오지 않고 그 주변 장기로부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은 초기에 자기가 앓고 있는 질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가 심해지고 나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그녀들이 허리가 아프고 빈뇨증이 오는 이유는 자궁에서 자란 종양이 점점 켜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누르면 빈뇨증이나 방광염이 왔고 뒤로 커지면 요통이 왔다. 초기에 생식기 질환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놀라웠다. 근데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빈뇨증이나 요통은 가벼운 질병이지만 생식기 질환은 그렇지 않다. 가벼운 질병부터 의심하고 고치려고 할 것이다. 어느 누가 허리 아프다는 이유로 산부인과를 찾아 정밀검진을 받으려고 할 것 인가. 그렇지만 자궁의 종양이 여러 가지 질병의 증상으로 둔갑하여 많은 이들을 속인 것이 속 상했다.

자궁편을 보고 당연히 엄마를 생각 안 할 수 가없었다. 나는 중년 여성이 생식기 질환이 많이 앓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는 걸 들먹이면서 엄마의 자궁의 안녕을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교묘한 유도 심문에 넘어 간 듯 본인의 질병을 고백했다. 엄마는 선근종이 있다 했다. 프로그램에서 배웠듯이 근종은 자궁 벽에서 나는 종양이라 알고 있다. 그런데 선근종은 또 뭘까? 엄마는 선근종은 근종과 다르게 자궁 내막에 나는 것이라 이야기해줬다. 프로그램에서 선근종은 안 보여 줬는데 그렇게 심각 한 건 아닌가 싶었다. 또 왜냐면 엄마는 아픈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감기는 자기 관리를 못 하는 사람이 걸리는 거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기에 엄마가 크게 아플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근종 자체가 문제이기보다 근종의 크기와 성장이 문제라고 했다. 엄마는 그걸 지켜보고 있다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고 보니 생리 때만 되면 좀 아파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생리통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거였다. 그러고 2년 뒤 엄마는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애석하게도 엄마의 바람은 외면당했고 나타난 증상은 현실적이었다. 생리혈은 많아지고 빈혈 수치는 높아졌다. 이건 선근종으로 비롯된 증상이 틀림없다.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선근종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반 근종과는 달리 국소적 병소라도 주변에 있는 정상 자궁 근육과 경계가 불분명하여 수술 시 혹만 도려내는 선근종 절제 수술은 어렵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근종이 있다는 걸 30대 후반에 알았다는데 50대인 엄마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 한 번 있는 생리와 생리통을 종양이 커지지 않을 걸 기대하며 그 고통을 참아낸 것 인가? 그 고통을 참아낸 엄마가 한심스러웠다.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하지 생식기 질환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 수술 받을 병이라 이야기 하지 혼자 그 고통을 감내한 엄마가 안쓰러웠다.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는 걸까 수술은 개복수술이 아니라 복강경 수술로 진행이 된다고 했다. 복강경 수술은 배에 구멍만 내기 때문에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아마 기술의 발전으로 엄마의 질병이 복강경 수술로 치료가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자궁을 적출해 낸다니. 장기 하나를 뺀다니 오히려 담대한 엄마 말고 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이때까지 뭘 한 걸까?

그런데도 나는 수술 전날까지 친구와 함께 PC방에서 밤새 게임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직 철이 덜 들었던 것 같다. 엄마의 수술은 그냥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암은 아니니까. 그렇게 위안 삼았었다. 그날 친구랑 저녁을 먹은 회덮밥이 문제 되어 엄마의 수술 당일부터 엄마와 같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기몸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종합감기약과 타이레놀을 먹었다. 오한이 오고 머리 아프고 하니까 당연히 감기인 줄 알았다. 정확한 병명을 모르고 올바른 치료를 하지 못한 채 이틀을 허비했다. 결국 호전되지 않자 감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병원을 가서 장염 진단을 받았다. 엄마와 같이 배를 앓고 있다니 이심전심으로 이해하라는 건가 싶기도 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엄마는 아직 마취에 덜 풀려 수술실에 있다. 의사 선생님이 나와 엄마의 수술과 종양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성공적인 수술임을 이야기해주셨고 엄마의 종양이 주먹만 했다 설명해 주셨다. 아니 종양이 주먹만 하다니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의 적출된 자궁을 보여주셨다. 생물시간에 봤던 자궁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단지 검은색에 가까운 고깃덩어리 같았다. 누가 보더라도 저게 자궁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그것이 엄마의 자궁이라 설명했다. 내가 저기에서 나왔다니 그걸 내가 지금 보고 있다니

수술 후 나흘 정도 있다가 퇴원한 엄마는 한동안 복대를 차고 다녔다. 배에 장기 하나가 빠졌고 구멍을 냈으니 해야 한다 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다시 집에서 엄마로 돌아왔다. 암의 상징성은 대단하다. 수연의 엄마는 암에 걸리고 나서 온 가족이 변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암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이 아주 잠시만 정신 차리는 척만 하고 그 전과 똑같아졌다. 물론 동생은 이 시기에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참작이 되지만 나와 아빠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빨래와 설거지는 엄마의 몫이었다.

자궁 없는 엄마는 여성성을 박탈당한 거라고 아빠는 시답잖게 이야기했다. 나는 아빠의 그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아빠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이야기를 엄마 대신할까 정작 엄마는 그런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아빠가 시답지 않게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난 이기적이었다. 아빠에 대한 증오를 거두지도 엄마의 몫도 거두지 않았다. 나도 누가 보기에 아빠랑 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연수의 엄마의 죽음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가족 모두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 주었다. 연수, 정수, 아버지, 근덕 다들 다르지만 올바른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의 죽음 앞에 이 모든 이들은 정신 차리게 된 것이다. 연수는 영석과 이별했고 정수는 늦은 사춘기였는지 삐딱선에서 정신 차렸다. 아버지 또한 상냥해지려고 노력했다. 근덕은 놀음을 끊고 택시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엄마의 희생으로 4명을 회개시켰다고 해야 할까 모두 과거의 모습을 버린 채 그들은 새사람이 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그린피스 회장이라는 사람은 세계 환경에 힘써 돌아다녔지만 잦은 출장 때문에 그의 자녀들은 고아처럼 지냈다고 한다.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연수의 엄마 인희도 그렇게 취급되었다. 우리 엄마도 연수 엄마처럼 소중하게 여겨져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암은 아니었다. 그것이 다행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해야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연수네 가족들에게 큰 실례가 된다. 그들의 아픔을 본 이상 이제라도 효도를 지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