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진영 작가를 알게 된 계기
발목신경이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날따라 대기시간이 길었다.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싶었다. 짜증이 날 뻔했지만 재빨리 밀리의 서재 앱을 들어갔다. 둘러보다가 구미가 당기는 제목을 가진 책을 찾게 되었다. <구의 증명>이었다. 나는 구(球)인 줄 알았으나 사람이름이었다. 그리고 책이 희한하게 써져 있어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도대체 주인공이 남자야 여자야? 책에서 구와 담이 나온다. 그렇다 책은 여러 장으로 구분해서 엮여있다. 홀수장은 담 짝수장은 구 이런 식으로 장마다 주인공이 바뀐다. 참신한 시도였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책은 여자주인공버전과 남자주인공 버전이 따로 있다. 그래서 2권의 책을 읽어야지 완벽한 독서가 된다. 하나(허나의 올바른 표현) 이 책은 한 권에 남녀의 이야기가 함께하고 있다. 짧은 소설인 <구의 증명>은 그날 바로 다 읽었다. 내용은 뭐였을까? 우울했던 것 같은데 구의 시체를 먹었다는 이야기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도 최진영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별하게 관심을 가진 작가는 별로 없다. 가장 최근인 구병모작가 그리고 군 복무 시절 빠지게 되었던 에쿠니가오리가 기억이 난다. 계묘년의 시작을 한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게 되어서 기쁘다. 감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 사는 나에게 특별한 선물인 셈이다.
2. 독후감 (줄거리)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평화다. 평화는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가출을 하여 장미언니로 시작해서 태백식당 할머니, 폐가의 남자(+목소리라고 칭하는 젊은 목사), 각설이패, 유미와 나리를 스쳐간다. 1부부터 5부의 이름을 스쳐 지나간 인물들로 제목을지어 아주 친절한 책이다. 평화는 가짜엄마와 가짜아빠에게서 탈출했다. 그리고 진짜엄마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한다.
평화의 가정은 폭력이 만연한 가정이었다. 평화와 엄마는 항상 아빠의 표적이 되었다. 그리고 평화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평화가 가출하게 되는 이유가 이런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단연 가족이라고 하면 띄게 되는 성격이 평화의 가정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자아이를 좋아하면 괴롭히는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처럼 왜곡된 감정이 그들의 가족에게도 비친 걸까? 좋아하면 왜 괴롭혀? 좋아하면 소중히 다뤄야지라는 반문처럼 평화는 자기의 가정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애초에 이 사람들이 진짜 엄마아빠가 아닌 거야까지 발전했다.
진짜엄마가 어디 있을까? 평화는 한 낱 여린 소녀였다. 그 소녀가 처음으로 행한 곳은 다방이었다. 어린 평화지만 영민했다. 한 남자아이를 꼬드겨 차역 광장이나 역사가 잘 보이는 곳에 지내게 되었고 그곳이 장미언니가 있던 그 황금다방이다. 모종의 이유로 장미언니는 평화에게 사랑을 주었다. 이때 평화는 장미언니가 진짜엄마이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장미언니가 볼품없는 애인 백곰에게 맞서지 앉고 맞고만 있는 모습에 경멸감을 느꼈다. 장미언니는 평화를 그의 방에 홀로 두고 나왔고 평화에게도 이어지는 폭력에 평화는 대응했다. 백곰은 평화의 손에 죽었다. 장미언니에게 실망한 이상 황금다방에서도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고 그렇게 또 그곳을 나오게 된다.
설날에 기차역에 기웃거리다가 한 할머니가 평화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평화는 벙어리인 체를 했다. 그렇게 어찌저찌 할머니의 집까지 가게 된다. 할머니는 평화를 자기 손녀만큼이나 소중하게 다뤄주었다. 밥도 주고 같이 살고 새 옷도 사주고 말이다. 평화는 할머니가 진짜엄마에 걸맞은 인물이라 생각했다. 할머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느꼈다. 하지만 평화는 쉽게 깨졌다. 연을 끊고 살았던 아들 내외가 집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업에 망했는지 그들은 할머니에게 찾아왔다. 염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평화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매일 눈칫밥만 먹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들은 목적이 뚜렷했다. 자기 사업자금을 빌려달라고 할머니의 식당을 팔자고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이 말이 어쩌면 지긋지긋할 때도 있다. 평화는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사랑한 할머니가 어떠한 수모를 당하고 있는지. 평화는 그렇게 다시 길거리로 떠밀어지게 되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어떤 역에 도착했다. 호주머니에 돈을 듬뿍 담아준 할머니 덕분에 요기거리는 할 수 있었다. 역사 어딘가에 웅크리고 자다가 돈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 마트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훔쳤다. 그 뒤를 따르던 사람이 평화를 불렀다. 그 사람은 평화와 함께 마트에 가서 먹을 것을 사다 주었다. 그는 평화에게 목소리라고 칭해졌다. 목소리는 이 지역 교회 목사이다. 평화에게 교회에서 밥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교회에 와서 지내라고 했다. 평화는 식당에서 한 남자를 만났고 그를 뒤 따라갔다. 폐가에 다다르고 이윽고 그와 함께 들어간다. 폐가에는 빈집인 양 불특정 한 사람들이 그들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있다. 정사를 벌이는 남녀 등등. 남자는 은둔형 외톨이다. 몇 년 동안 고시공부를 하다 그렇게 되었다. 그의 엄마도 그를 지원하다가 세상을 뜨게 되었다. 남자는 스스로 패배자라고 여기며 살고 있었다. 평화는 그의 숨겨놓은 일기를 보고 그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인근 주민들에 의해 그들의 행태가 발각이 되고 목소리에 의해 그곳에서 꺼내지게 된다. 평화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착하게 살아야 할 것 만 같은 그런 부담으로 교회에서 탈출한 평화가 다시 목소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끝은 결국 똑같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 동네가 장날인 듯 각설이패가 있었다. 평화는 그들의 차량에 몰래 숨어 들어갔다. 공연이 끝나고 차는 움직였다. 그렇게 평화는 또 돌아다니게 되었다. 당연히 평화는 발견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각설이패의 대장 또한 진짜엄마를 찾는다고 한다. 전국 방방 곳곳 돌아다니게 되면 결국 찾지 않을까라고 하며 순회공연을 다닌다고 했다. 평화가 역 앞에서 진짜엄마를 찾는 것처럼 대장도 그러하였다. 대장은 일행에게 뒤통수를 맞아 돈과 사람을 잃었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겪고 경찰들과 얽히자 평화를 납치하게 된 꼴이 돼버린다. 대장을 따르는 달수 삼촌이 돈을 쥐어주며 평화를 서울로 보내게 된다.
평화는 사람들이 많은 서울에 도착했다. 노숙자들 천지였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또래를 만나게 되고 그들이 유미와 나리였다. 비행청소년들이다. 학교를 다니거나 다니지 않는. 유미와 나리 또한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집을 나왔다. 특히 유미는 새아빠에게서의 폭력을 벗어나고자 가출을 했다. 그들 무리에 상호라는 남자아이도 있었다. 상호는 재개발 예정인 판자촌에서 살고 있다. 평화는 상호와 유대관계를 쌓는다. 섹스는 있지만 사랑은 아닌 듯하다. 평화는 그 순간만큼은 걱정이 멈췄다. 평화는 보호소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이내 그곳에서도 나오게 된다. 유미는 투신을 했다. 폭력을 벗어나고자 가출을 하지 못하게 되니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평화는 그녀의 새아빠를 죽이고자 마음을 먹는다. 이미 죽여본 사람이 있기에 그 마음을 먹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제껏 만나온 사람들에게서 버려지거나 도망치면서 웃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엄마는 없었다. 평화는 말한다. 진짜엄마를 찾고 싶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건 믿지 않는다고. 유미의 새아빠를 공격하고 평화가 찌른 칼로 평화도 복부에 공격을 당했다. 과거 자기 아빠의 폭력이 오버랩이 된다.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이 겹쳐 생각나나 보다. 평화의 엄마는 평화의 아빠를 칼로 찔렀다. 그리고 한 사진이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가 화목하게 같이 찍은 사진. 그 속에는 평화도 함께하고 있었다. 엄마는 배에 손을 얹고 평화야 라고 평화를 부른다.
3. 독후감 (내 생각)
최진영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이 이런 어두움 때문이었다. 그 어두움은 <구의 증명>에서 발견되었고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에서 증명되었다. 단지 두 권의 책으로 전자책으로 겉핥기식으로 읽은 거지만 그렇게 외치고 싶다.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만큼 집중할 수 있었다. 줄거리를 쓰기에는 대충 읽은 것 같아서 누가 보고 지적 할까 봐 걱정이 된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게 메시지만 전달이 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지적은 지양해 줬음 한다.
평화라는 이름은 맨 마지막에 밝혀진다. 제목과 소설내용이 연결되는 구조 그리고 그것이 명확한 이런 책들을 가장 좋아한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을 보고 최소 몇 분이라도 유추해보고자 한다. 제목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제껏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제목과 본문 내용이 은유로 덮여있어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스쳐간 사람도 여럿이고 평화가 자기 이름을 모른 채 여정을 떠나는 것도 키 포인트다.
당신. 작가가 마치 나를 지목하는 것 같았다. 내 주변에도 이런 소녀가 있을 수 있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만약 평화가 나를 스쳐갔다면 나는 장미언니, 할머니, 남자, 대장, 상호 이들 중 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더 현실적으로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대해줬을까? 내가 평화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평화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표면적은 도움은 안 하나 못하다. 평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몰랐던 목소리와 인근주민들과 경찰은 폐가의 남자와 평화를 분리시켜 놨다. 그들은 평화를 구출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듯. 평화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가 지나치면 현실적인 이유로 할머니처럼 버려질 수 있다. 나도 누군가를 도와줄 때 그것이 임계에 다를 때 그 도움을 멈추게 될 것이다. 평화를 보니 그런 나의 죄성이 찔렸다. 난 누군가의 무한한 사랑으로 자라고 구원받았으니 말이다.
내가 평화라면? 이런 생각이 일차적으로 들 수는 없었지만 독후감을 쓴 김에 한 번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평화가 여러 사람을 스쳐가면서 성장해나가지만 결론이 진짜엄마가 없다로 끝맺음하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진짜엄마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겠지만. 평화도 평화가 이야기하는 가짜엄마가 진짜엄마라고 알고 있었을까?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말한 걸까? 폭력 속에 점철된 삶 속에서 그것이 가짜라고 칭하면 맘이 더 편할까? 평화의 진짜엄마가 없다는 그 말이 가짜엄마가 진짜엄마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일까?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진짜엄마라고 생각하고 믿었던 사람들도 다 가짜였다. 진짜를 찾을 수 없던 것이 오히려 진짜에서부터 벗어나서이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진짜엄마는 의미가 없다. 가짜엄마든 진짜엄마는 상관이 없다. 평화만 평화로우면 그게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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