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예열할 여유 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바로 본문부터 들어가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읽다 보면 나름대로 이유는 있는 듯했다. 그 이유는 제목이 가져다주는 강렬함이었다. 승리자들의 수식어인 만들어진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만들어진 것이라니. 어떠한 의도로 쓰였는지는 바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보통 사람들이 풍문이나 스캔들을 듣거나 뒷담화를 하는 것을 즐긴다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본문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읽기 불편하지는 않았다. 초반부터 콜럼버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를 하니 재미없을 수 없었다.
그래도 656 페이지의 본문 분량을 소화시키란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맨 마지막에 배치된 4 페이지 분량의 옮긴이의 말을 먼저 보았더라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본문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약을 먹을 때도 아프기 전에 먹어야 약효가 든다. 정작 아플 때 먹으면 늦은 거나 다름없다. 본문을 다 읽고 옮긴이의 말을 읽은 것이 그런 셈이다. 작가의 주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단순히 인물들의 비방과 숨겨진 이야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지 못했기 때문에 책 중 표현들을 오해하지 않고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결국 책의 결론을 어떠한 사건을 바라볼 때 개연성을 염두해야 된다라고 받아들였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에게 독일인의 특징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나 자주 나오는 인물들이 다들 독일인이었다. 괴테, 니체, 토마스 만 등등 그들의 말을 많이 인용을 했다. 그리고 헤겔의 사고방식으로 승리자들을 바라본 듯하다. <시대정신>을 자주 언급을 했고 <테제>라는 단어도 이야기를 한다. <테제>라는 말을 생소해서 찾아보았는데 <테제>란 '하나의 계기'를 뜻하는 헤겔 철학의 용어로, 정립이라 번역되는 말이라고 네이버 검색 결과로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도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렇다 철학하면 독일이었다. 배우 이순재도 서울대 철학과를 나왔고 독일어를 곧 잘하는 것을 TV 프로그램에서 봤다. 그리고 독일인 하면 재미없고 진지한 이미지를 가질 것 같다는 편견도 있지 않은가. 작가가 독일인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런 냉철한 분석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역시 낭만은 프랑스고 독일은 냉철함이 떠올랐다.
책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죄다 서양인들이었다. 독서모임을 하고 나서 읽은 책들이 이 책을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마 이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배경지식이 100이라고 친다면 20 정도 가진 셈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햄릿>, <죄와 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동물농장>,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것으로 그만두지 않고 독서모임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작가들에 대한 냉철한 평가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와 괴테가 그랬다. 하지만 자주 언급되는 토마스 만은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만들어진 승리자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었는데 토마스 만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꼭 다음에는 토마스 만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도전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동양인 독자 시점에서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는 게 많지 않아서 또는 책을 많이 읽어오지 않아서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인 특히나 유럽인들 위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제가 인물 평가가 아니고 주제와 의도를 제시해주기 위한 수단으로써 여러 만들어진 승리자들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말이다. 작가가 동양인이었거나 오히려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수단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서양인들은 이 책의 주제를 동양인들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흐, 고갱이나 세잔 말고 이중섭이나 박수근, 김환기였다면? 프리드리히 2세 보다 세종대왕이었다면? 레닌보다 김구였다면? 뉴턴보다 장영실이었다면? 콜럼버스보다 김정호였다면? 이렇게 제시한 인물들이 우리나라 인물들로 바꿔 구성이 되어있었더라면 책 주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배경지식이라는 것과 그 문화권에 있다는 것을 쉽게 간과할 수 없었다.
작년에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일상의 무기가 되는 논리 수업>의 <체리피킹> 부분에서 보았던 확증편향이나 편향된 표본으로 인한 비형식적인 오류를 가지고 <만들어진 승리자들>을 보려고 한다. 우선 <체리피킹>에서는 수정헌법 2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흔히 미국이라는 나라는 무기를 휴대할 권리가 있다라며 수정헌법 2조를 들먹인다. 실제로 수정헌법 2조에는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가 있고 이를 인용할 수 있지만 그 앞에 '규율 있는 민병은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라는 내용이 더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화기를 소지하는 것이 수정헌법 2조로 합당하다 볼 수 없다. 이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승리자들> 중 두 가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예술계 이야기랑 성경 이야기이다.
2년 전 이맘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야수파 걸작전>이 열렸었다. 도슨트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했는데 그곳에서 큐레이터 분이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구독하고 있는 ㄹㅇ이라는 채널의 유튜버의 남동생이었다. 아무튼 거기서 큐레이터 분이 1905년의 가을 살롱을 기억하라고 하셨고 미국의 컬랙터인 페기 구겐하임을 기억하라고 했었다. 정확히 페기 구겐하임인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건 미국사람이고 돈이 많은 여성이었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에서 보면 위대한 작품과 작가들이 컬랙터들에 의해서 또는 미술관장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야기한다. 물론 이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20세기 초 작가들은 살롱을 통해서 서로의 작품들을 전시하며 본인들의 작품을 뽐냈고 그곳에 참여한 여러 작가들은 새로운 화풍이나 아름다운 붓터치에 신선한 자극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고흐도 그랬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로 의해서 그들의 작품이 위대해진 것이 아니라 화가들 그 집단이 그들을 더욱 위대하게 했다는 새로운 시점을 제시해보고 싶다. 더불어서 이들이 또 위대하게 평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컬랙터 덕분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에서는 이 부분을 확대해서 해석하고 있지만 안목을 가진 자본가들의 도움이 있어야 작품이 보존될 수 있다. 20세기 초에는 더욱 그랬다. 잦은 전쟁으로 많은 작품들이 훼손되거나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컬랙터들과 미술관장들이 하나의 작품과 작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지라도 그것이 본질이라기 보다도 그들의 역할은 위대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충분조건일 뿐이다.
<만들어진 승리자들>에서 기억나는 성경 말씀은 에스라 4서와 요한복음 8장 6절~8절이다. 콜럼버스는 성경을 들먹이며 이사벨 여왕을 꼬셔서 본인의 욕심을 채우려고 했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여왕에게 적절한 전략이었다. 성경 말씀에 7분의 6이 육지라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하고 찾아봤다. 실제로 에스라서를 읽은 지 한 달도 안돼서 이런 구절이 없었는데 하고 의문을 품었다. 에스라서 내용을 생각해봐도 육지가 7분의 6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콜럼버스가 인용한 것은 외경인 에스라 4서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현재 읽는 성경은 정경이라고 한다. 그 외 외경이 있고 위경이 있다. 외경과 위경은 출처가 의심되고 내용이 의심되기 때문에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외경을 참고해야 한다는 입장은 잘못된 입장이지만 외경을 어디까지 참고할 거냐에 대한 것은 신학적인 이슈라고 한다. 그리고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예수님이 땅에다 무언가를 쓴 것은 따로 이야기가 없으니 하나님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무기가 되는 논리 수업>에서의 <체리피킹>이 여기에 해당된다 싶었다. 요한복음 8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길어지니까 <음행 중에 잡혀온 여자가 용서받다>가 8장의 주제와 더불어 붙어진 제목이라 간단 설명하고 싶다. <체리피킹>의 오류를 범해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보다 많은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선택적으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앞서 다뤄본 두 가지뿐만 아니라 <만들어진 승리자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도 작가가 선택적으로 인용하고 싶은 것만 가져왔을 수 있다고 의심해볼 만하다 싶었다.
중학생 때 배가 아파서 양호실에 간 적 이 있다. 그때 양호선생님이 컴퓨터 앞에서 펑펑 울고 있었는데 그 모니터 화면을 보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영상이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꽤나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양호선생님이 왜 펑펑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친지가 죽은 게 아닌데. 진보진영엔 노무현이라면 보수진영에는 박정희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젊은 사람이 보수라면 그 심장은 멈춘 것이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출처는 모른다. 고등학생 때 대선에 대해 교탁에 와서 연설할 정도로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사람이었지만 대통령을 추앙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이명박을 욕하는 건 되고 노무현 욕하는 건 금기되었다. 실제로 초등학생 때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게임 환경에서 이명박을 콘텐츠로 해서 재밌게 놀았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렇수 없었다.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양호선생님의 펑펑 우는 모습이 꽤나 큰 인상 깊었는지 그때부터인가 대통령을 추앙하고 싶은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만들어진 승리자들>, 이 책은 감사하게도 위인들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줬다. 어떠한 사건을 바라볼 때 여러 시선으로 보는 것은 사실에 다가갈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다준다. 나폴레옹이 왜 위인이 되었는지 솔직히 관심도 없고 나폴레옹이 사실 위인은 아니래라고 이야기해도 관심 없다. 하지만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책은 명성의 전당과 관련한 모든 측면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위인과 천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 색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위인들을 흠집 내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관심 있는 것은 여기서 나오는 위인 즉 천재들이 어떠한 기구한 삶을 살았고 어떻게 조명되었고 후세에 어떻게 비칠지 바랬고 그런 점들이 이었다. 이번 독서는 사건을 바라볼 때 여러 시선에서 바라보는 통찰력과 개연성을 염두에 두는 능력을 함양시킬 수 있어서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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