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호프 자런의 랩걸(Lab Girl)

1. 읽게 된 계기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으로 독서모임을 가졌었다. 그때 데이나님이 언급하신 책 중에 호프 자런의 랩걸이라는 책이 있었다. 처음에 랩걸이라고 하길래 랩(Rap)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런 맥락이 아닌 듯해서 곧 장 다른 랩이 무엇이 있나 생각을 해봤다. 다행히 랩(Lab)이 떠올리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데이나님은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는데 자주 인용한다며 랩걸(Lab Girl)을 소개해주셨다. 그 인상 깊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자기가 원래 되어야 하는 것이 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그리고 이책이 알쓸신잡에서 유희열이 언급했었다고 첨언해 주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영향력 아래에 나 또한 랩걸을 읽어보야겠다 생각했다.
 

2. 독후감

2-1. 출판사에 대해

 
허블 하면 SF소설이 떠오르는 만큼 출판사가 좋아하는 책이 구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형 출판사 보다 중소형 출판사가 그런 경향을 쉽게 캐치할 수 있다. 그래서 허블이나 위즈덤하우스와 같은 출판사의 책이면 제목과 작가를 보지 않고 읽게 되는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호프 자런의 랩걸(Lab Girl)은 알마라는 출판사에서 번역해서 출판을 했다. 알마 출판사의 소개글을 읽어보면 알마는 아이쿱생협과 더불어 협동조합의 가치를 실천하는 출판사입니다. 알마출판사는 다양한 장르간 협업을 통해 실험적이고 아름다운 책을 펴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어릴 때 엄마가 생협 조합원이기도 했고 거기서 나온 식재료들이 우리 집 식탁에 자주 올라왔기 때문에 생협은 내게 아주 익숙한 브랜드이다. 그래서 알마 출판사에 괜스레 더 정이 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랩걸(Lab Girl) 원서 초판은 16년 4월 5일에 출간되었다. 알마 출판사는 이듬해 2월8일 번역본을 출판했다. 1년도 안된 사이에 책이 번역이 돼서 출간된다는 것이 얼마나 느리고 빠르고 가늠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다른 책을 읽어 나갈 때 그 기간을 살펴보면 재밌을 것 같다.  또한 알마 출판사에서 출판되는 책들을 보았다. 교보문고 판매량 순위로 1~5위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은 책이 나온다.

  • 호프 자런의 랩걸
  • 올리브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권일용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김은성의 빵야
  •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소프루

랩걸(Lab Girl)은 여성과학자의 이야기 더불어서 페미니즘이 색채가 있는 책이었다. 알마가 생협과 일맥상통한다면 얼추 이해가 가는 선택이라고 이해를 했다. 유기농과 자연을 중요시하는 생협 다시 말해 아이쿱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다음 책 4권은 어떤 정체성을 가졌길래 출간했을까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다. 알마 출판사는 허블 출판사처럼 내가 신나게 이 출판사는 콘셉트를 잘 지켜서 출판하는 책들의 성격이 다 비슷해요!라고 말을 못 할 것 같다. 아이쿱생협과 가치관을 함께하는 출판사라 관심이 가지만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다. 아직 내가 자세히 못 알아봐서 이런 오해가 생긴 거라 생각하고 싶다.
 

알마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싶다면?

2-2. 감상문

 
랩걸은 자전적인 책이다. 책을 다 읽고나면 마지막에 동료 과학자인 빌을 위해서 책을 쓴다고 한다. 그녀에게 빌은 그녀가 성장하는데 필요했던 자양분이었다. 빌이 없었으면 그녀도 없었을 것이다. 한 여성과학자의 일대기이기 전에 빌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그를 기리기 위한 책이었다.
 
그녀는 버클리 대학에서 석박사 조교 일 때 학부생인 빌을 만났다. 그녀는 빌의 홀로 구덩이를 파내는 괴짜같은 성격에 매료되어 빌을 실험실에 고용하자고 지도교수에게 추천했다. 그 이후 그녀와 빌의 관계가 시작됐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 둘이 계속 붙어 다니고 대학을 옮기고 실험실을 다시 만들고 하는 과정에서도 함께 있으니 언제 정분이 날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일이 벌어지지 않자 역시 괴짜끼리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역시 미국은 남녀끼리 친구가 되는 그런 오묘한 바이브가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박사가 되고 연구 매진하는 싱글 여성이 되어가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모임에서 만난 남자인 클린트에게 먼저 다가가 데이트 신청을 하고 단 번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빌과 클린트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책은 빌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클린트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되게 담백하게 그려낸다. 그저 빌이 알파메일이 아니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동족혐오라는 표현이 있듯이 그녀와 빌은 너무나 비슷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들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빌이 가지고 있는 손의 비밀 때문일까 라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왜 나는 그녀와 빌의 관계에 대해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남녀 간에 친구가 될 수 없다는 통념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인지부조화가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거리가 없던 그들이 어떻게 그냥 직장동료 또는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
 
알마 출판사에서는 사이언스 걸즈라는 시리즈로 여러 책들과 함께 랩걸을 묶어서 소개하고 있다. 방점이 사이언스인지 걸즈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류를 해보았을 때 페미니즘 책으로도 충분히 분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은은하게 깊숙이 메시지를 던지는 책으로 말이다. 묵묵히 과학자로 성장하려는 그녀에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문제를 봉착한다. 동료 과학자들의 멸시와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여성이 되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녀가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인생의 일부분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슬퍼했다" 라고 언급했을 때 과연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씁쓸했다. PMS(월경 전 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자인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없었고 인종차별에 견주어 미뤄보았다.
 
책 내용의 절반에는 그녀의 연구 내용과 성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즉슨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단지 한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녀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연구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 식물의 삶과 우리 인간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투영시킬 수 있고 교훈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사는 식물은 골칫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지 않아야 하 곳에서 번창하는 식물이 잡초다" 라던지 "단풍나무가 자손들에게 제공하는 한 가지 믿을 만한 부모의 사랑이 있다" 라고 하면서 어린나무들을 위해서 물을 나눠주는 단풍나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충분한 울림이 된다.
 
데이나님이 언급했던 구절이 언제나 오나 손꼽아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근데 그 노력은 책을 92% 읽었을 때 찾아볼 수 있다. 그 구절은 그녀의 아들과 하는 대화에서 나왔다. 호랑이가 되고 싶은 아들이 재촉하자 그녀는 "자기가 원래 되어야 하는 것이 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단다" 라고 말해줬다. 그녀가 이때까지 박사가 되고 실험실을 꾸리고 상을 받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경험한 장본인으로서 하는 조언인지 어떤 의미인지 단번에 캐치하지 못했다. 아들이 호랑이가 되고 싶은 이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 구절을 인용하지 않았더라면 쉽게 넘어갈 문장이었다.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지 간파하지 못했다. 알쓸신잡에서 이 책을 언급했다던데 이 문장에서 그녀의 저의와 철학을 어떻게 설명할까? 궁금은 했지만 찾아보고 싶은 정도의 궁금증은 아니었다. 
 
데이나님의 추천이 없었다면 랩걸을 과연 읽었을까? 라며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자력으로 찾고 또 스스로 자극받아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가정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나의 밑낯 그대로 독후감이 나왔을 것이다. 앞서 읽게 된 계기에서도 언급했듯이  데이나님의 영향력 읽게 된 것이라 내 생각으로 가득한 순수한 독후감은 일부 훼손되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의 순수 독후감을 남기지 못해 아쉬웠다. 이 책을 읽고 떠오른 것이 데이나님의 생각인 것인지 오로지 내생각인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쨌든 아무렴 독후감에 대한 나의 편집적인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 고지식한 내 모습을 좀 유연하게 변화해 보자 마무리를 지어본다.
 

3. 인상 깊은 구절

 

 
대단한 발견을 하고 진정한 연구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되어 큰 만족감을 얻은 그녀라도 그것이 가장 외로운 순간이었다고 회고하는 그녀의 말이 크게 와닿았다. 그녀는 대체 어떤 싸움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