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인문학/독후감

"책은 시대를 넘어 대화를 만든다" 『양귀자- 숨은 꽃』

소한초이 2025. 3. 1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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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는 거실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이 있다. 가끔 그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곤 하는데, 이번에 빛바랜 책을 꺼내보게 되었다. 최근 독서모임에서 새로운 출판사와 함께하는 이상문학상을 이야기했고, 가장 최근에는 양귀자의 『희망』을 읽었다. 그 때문인지, 책장에 꽂혀있는 1992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양귀자의 『숨은 꽃』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숨은 꽃』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주인공 또한 직업이 글을 쓰는 사람이며, 소설 속에서 양귀자가 집필한 책 이야기가 등장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희망』이라는 제목이 어떻게 붙여지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언급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김제의 귀신사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15년 전 스쳐 지나갔던 인물, 김종구를 다시 만난다. 주인공은 현재의 김종구와 과거의 김종구를 번갈아 떠올리며 정리되지 않았던 무언가를 정리해나간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교차 속에서 자신이 놓쳤던 부분을 다시 바라보는 듯했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모순』, 『희망』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로 읽는 그의 소설이다. 그의 작품을 계속 읽으면서 확실히 느끼는 점은 시대상을 굉장히 생생하게 담아낸다는 것이다. 『숨은 꽃』 역시 『희망』과 마찬가지로 운동권 시절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그 시절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갔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번 독서는 책의 내용 자체보다도 그 이면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1993년 2월, 아버지가 이 책을 읽었다는 기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책을 살 때 항상 구입한 연도를 적어 두었고, 짧은 독후감을 남기기도 했다. 과거 아버지가 읽었던 책을 찾아 읽어보는 것은 내게 뜻밖의 보물이 되곤 한다. 이번에도 『숨은 꽃』을 읽으면서, 이상문학상을 계기로 아버지와 책과 독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여백에 아버지는 이런 글을 남겼다.
“소설의 시작과 아무에게 시간적 시일에 출발내 시간에서 무려 총 48시간정도. 역시 우연찬게 만나서 그로인해 나라의 일에 대한 회상과 현실의 그와 대화. 과거의 그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그를 판단 하는것에 대한 오류. 무엇인가에 대한 여백을 마무리 하면서 구태연하게 채워진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에 지금 삶 자체가 인간의 눈에 대한 허를 받고자 사는건지 내 삶을 내가 사는건지 아이니컬하다. 자연에 대한 삶을 살려고 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어쨌든 나나 너나 모두가 인간이라는 한정된 삶을 살다 간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제목이 왜 미미하게 되었는지도 이야기가 나온다. 『희망』을 읽으면서 나 또한 여느 독자처럼 제목이 미지근하다고 생각했었다. 소설에서 제목에 대한 이야기로 쉽게 해소가 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다. 『숨은 꽃』에 『희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희망』이란 제목의 장편을 펴냈을 때 사람들은 제목의 미미함을 지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망이, 자식이, 그런 것이 미미하다면 대체 무엇이 강력한 것인가, 끓기도 전에 퍼져 버려 설익은 밥처럼, 이해되기도 전에 진실은 쓰레기통으로 처박힌다.”
 

 
 
93년에 남긴 아버지의 독후감이 25년 지금 나와 아버지를 연결해준 것처럼,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꾸준히 독후감을 남기고 있고, 훗날 내 자식들이 이 글을 읽고 내게 찾아와 연결되기를 바란다. 오늘과 같은 미래를 꿈꾸며, 미래의 내 자식들에게 항상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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