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인문학/독후감

짜증이 많은 나에게 유독 필요한 마인드 『와타나베 준이치 -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소한초이 2024. 9. 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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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을 읽기 전 나의 생각


외국서적을 읽을 때면 항상 그 책의 원제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습관은 꽤나 오래 되었다. <나는 둔감하게 삵로 했다>라는 제목이 마케팅적으로 바뀐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다. 이런류의 책이면 책일 수록 어투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

원서의 제목은 鈍感力(둔감력)이다. 일본스럽게 딱딱한 둔감력이 어울리는 것 같다. 목차도 살펴보면 국문번역판과 살짝 뉘앙스가 다르다.

조사해보니 2007년 형설라이프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원본 그대로를 유지했고 2022년에 다산초당에서 나온 책은 제목도 목차도 살짝 비틀었다. 당연히 정대형 번역가와 정세영 번역가로 역본도 다르다.

15년사이에 독자들의 수준이 달라졌는지 출판사의 독자 타겟팅이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화를 확인하는 작업은 늘 즐겁다.

원서의 목차)
ある才能の喪失
叱られ続けた名医
血をさらさらと流すために
五感の鈍さ
眠れる大人
図にのる才能
鈍い腸をもった男
愛の女神を射とめるために
結婚生活を維持するために
ガンに強くなるために
女性の強さ
嫉妬や皮肉に感謝
恋愛力とは?
会社で生き抜くために
環境適応能力
母性愛この偉大なる鈍感

다산초당의 목차)
하나. 둔감한 마음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둘. 스트레스조차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둔감함의 힘
셋. 마음은 둔감하게, 혈액순환은 시원하게
넷. 조금 둔감하게 살아도 괜찮아
다섯. 어디서든 잘 자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
여섯. 누가 뭐래도 나를 사랑하는 게 먼저다
일곱. 둔감한 몸에는 질병조차 찾아오지 않는다
여덟. 결혼 생활에는 정답이 없다
아홉. 암에 대처하는 둔감한 사람들의 현명한 자세
열.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강하고 둔감하다
열하나. 세상의 모든 엄마는 여자다
열둘. 타인은 끝까지 타인일 뿐이다
열셋. 사랑을 하려면 예민한 마음부터 바꿔
열넷. 직장 내 신경 끄기의 기술
열다섯. 주변 환경은 언제나 변한다
열여섯. 어머니의 사랑, 그 위대한 둔감력에 대하여


2. 독후감


둔감력을 평소에 생각했던 개념과 일치시켜보자면 여유로움이라 일컫고 싶다. 독서모임에서 연이어 관계에 대한 주제로 논하고 있는데 그 때마다 여유로움의 중요성을 주창하고 있다. 세계적 그리고 역사적인 대학살도 개인의 삶에 있어서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뉘른베르크 재판 속 판결문을 참고하면 그런 학살은 여유로움과 상관없을 수 있겠지만 그 뿌리는 여유로움 또는 안분지족에 있다고 생각한다.

와타나베 준이치의 이야기 중에 숙면에 관한 내용은 인상 깊었다. 여유로움 즉 둔감력의 관점으로 수면을 생각해보지 못 한 것이다. 생각보다 일상에서 숙면은 중요하다. 하나 개인적인 스토리로 예시를 들어보고자 한다.

올해 초 여자친구가 2시간 시차가 있는 동남아로 파견근무를 갔고 지금까지 잘 직장생활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자기전에 페이스타임을 하는 것이 잠자기전의 규칙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늦어도 12시전에는 잠자기로 했었다. 서로의 건강을 위해서다. 하지만 시차가 달라지니 12시라는 시간이 달라졌다. 여자친구와의 영상통화를 기대하고 기다리면 새벽2시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몇 달은 그런식으로 흘러갔고 피로가 누적되어 안구건조증이 일시적으로 심해졌고 노곤한 하루가 연이어졌다. 결국 피곤함이 끝에 달해 서로 이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했고 감사하게도 나의 12시에 맞추기로 했다. 여자친구 서두를 필요 없고 나는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면서 관계도 전 보다 나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안구건조증과 피로는 해결이 되었다.

스마일라식 수술 후 얻은 안구건조증은 나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좋아하는 자리와 싫어하는 자리가 생겼다. 인간관계에서도 그것이 반영이 되곤했다. 적은 수면은 전체적인 몸의 면역력을 저하시킨다. 나의 안구 건강도 마찬가지였다. 숙면을 취하지 못 하면 찡그리는 표정을 자주 짓고 인공눈물을 자주 넣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하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충분한 수면으로 이런 점이 다 해소되었다. 둔감력이라는 것이 다름이 아니라 이런 논리로 흘러가는 맥락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의 둔감력은 아직도 물음표다. 잔소리나 듣기 싫은 소리를 마이동풍으로 흘러가는 능력은 가히 부럽고 탑재해야 할 능력이지만 과연 항상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식으로 넘어가야 할까?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폭력 등등 이런 것들도 둔감해야 되는 건가? 과거에는 더 심했겠지만 지금도 저급한 스몰토크는 여전하다. 하지만 그걸 문제 삼는 건 쩨쩨해 보인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저급한 농담을 안 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과 둔감력을 키우는 방법이 있는데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아직까지도 고민이다.

둔감력에 대한 개념을 강조하는 책을 읽다 보니 그 정반대를 이야기하는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롤프젤린의 <예민함이라는 무기>라는 책을 찾게되었다. 예민함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펴볼것이고 어떻게 그 장점을 특화시킬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아래와 같다.

  • 타고난 민감성을 활용해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일찌감치 섬세한 신호를 감지하면 좋을 것이다. 섬세한 신호가 당신이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서부터 무리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예민함은 지각과 자극이라는 단어와 친밀하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그 경계에 대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예민함은 둔감력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이며 결코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 그리고 예민함을 시작으로 발전했을 때에도 결국 둔감력이 가지는 효과와 같아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 것이라 믿는다. 둔감력과 예민함은 시작이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라는 이야기로 끝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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