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기 전 제목에 대한 감상
파과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그래서인지 두 음절을 가진 제목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건 표지 디자인이었다. 피사체를 분홍색으로 그리고 점묘법으로 표현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입에 담배인지 무언가를 물고 있었고 시선은 안하무인 식이였다. 종합적으로 그의 모습은 불량해 보였다. 표지에 디자인된 사람이 주는 불량스러움이 본문과 연관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결국 책을 펴보지 않는 한 어떤 추정과 억측은 한 낱 재미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파과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파과 한자어로 여자 나이 16살을 의미하기도 하고 남자 나이 64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그리고 영어로는 puberty 다시 국문으로 번역하면 사춘기이다. 파과라는 단어를 이 책 제목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제목을 가지고 본문 내용을 추정해보고자 하는 능력과 더불어 그 노력은 평소에 단어를 얼마나 알고 있냐에 비례했다. 그런 점에서 본문 내용을 쉽게 추정할 수 없었고 으레 짐작도 어려웠다. 내용에서 나이가 중요할까? 그러면 여자 나이일까 남자 나이일까? 아니면 사춘기가 소설의 주된 내용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파과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선정한 것은 실수라고 본다. 청소년 문학처럼 보이는 사춘기 소설이 파과라는 어려운 제목을 가진다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2. 독후감
소설 속 세계관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십여 페이지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집중을 하지 못했다는 핑계보다 소설의 서사와 독특한 세계관이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 더 적절해 보인다. 방역이라는 단어가 이 소설 속에서 청부살인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내용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소설의 시작을 일상적인 내용으로 담아낸 것은 그 일상에서 주는 무언가를 밑에다가 깔아 두려는 속셈이라 생각했다. 어떠한 속셈이라도 처음부터 그것을 간파하기를 어렵듯이 책을 다 읽어 갈 때쯤 소설의 첫 시작인 지하철 에피소드가 이해가 됐다.
표지 디자인에서 비롯된 소설에 대한 과소평가는 본문의 여러 요소들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소설 자체도 가볍지 않았으며 문장력, 어휘력이 뛰어났다. 모르는 단어들이 즐비했는데 오랜만에 공부가 되었다. 더 나아가 단어 때문에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구병모라는 작가는 어떤 공부를 해왔길래 어휘력이 좋을까? 혹시 국문과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감탄하며 책을 읽었다. 항상 필력과 표현력을 함양시키고 싶어 왔으니 그 감탄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 의식이 지금 이 독후감에 작가의 대한 나의 동경과 찬사가 투영되어있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 풍부한 표현과 적절한 단어 선택에 대해서 심사숙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멋진 문장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끝에는 미천한 작은 표현력 그릇에 마주하게 되면서 아쉬운 마무리가 되곤 한다.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도대체 뭘까 라는 질문은 어쩌면 이 작가의 표현력을 다 소화시킬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소화시키지 못 한 자의 방어기제라 부끄럽기만 하지만 책으로 읽는 것보다 시나리오로 영화로 보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소설 읽는 내내 하곤 했다. 중요한 사건이나 구분되는 시점을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여가며 책을 읽었음에도 전체적인 이미지만 그려질 뿐 세세한 이야기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 파과를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그 주제는 ' 특수한 직업 속에서 변해가는 노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을 지엽적으로 바라본 것 일지 모르겠지만 이 정리가 그나마 소설에서 주축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주인공 조각과 투우의 갈등이나 청부살인이 주축일 것 같지는 않다.
노인은 호르몬의 변화 또는 노화로 인해서 젊었을 적 일처리 방식과 원칙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을 많이 범하게 되었다. 전과 달라진 현재의 일처리 방식과 능력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그녀의 성격이 물러진 것도 큰 이유가 된다. 강박사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은 전성기의 그녀의 모습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을 만들어 낸 그녀는 프로 답지 못 했다. 방역업 창립자이자 동업자인 류가 그의 가족들이 죽고 나서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라는 말을 했고 그것을 가슴에 새기며 지켜온 그녀지만 노화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방역업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빈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살인병기로 자란 조각의 삶에는 사춘기 시절이 부재했다. 어떠한 곳에서든 생존했어야 했기에 사춘기 소녀의 모습은 그녀에게는 사치였을 거다. 살인병기로서 수행능력이 떨어짐에 따라 조각이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사춘기 감성들이 사뭇 한 송이 꽃처럼 피어오르는 듯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서 반려견에 대한 태도 그리고 본인에 대해서 관심 가지기 시작했다. 반려견 무용에게 살가워지는 것을 시작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강박사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조각은 본인의 의지대로 미용실을 찾아왔고 툴툴거렸지만 결국 네일아트까지 받게 된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제 조각은 정상인 범주에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를 내보인 셈이다. 환갑이 넘은 조각이지만 사춘기를 회복하는 모습에 드디어 이 소설이 왜 파과라고 불려지는지 마치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것 같다. 소설을 읽는 것을 그치지 않고 독후감을 써가며 퍼즐을 완성했다는 성취감 또한 들었다. 그리고 독후감이 작가와 가까워지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 보며 파과라는 단어와 구병모 작가를 연관해서 기억해보려 한다.
3. 인상 깊은 구절
53p 와 337p에서 난 당신 어머니가 아니라는 말이 똑같이 소설의 처음과 끝으로 반복되어 수미상관으로 나온다. 이 한 문장을 보더라도 조각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다. 본문 분량 53p부터 337p까지의 일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조각은 변하게 된다. 그 척도를 보여주기 위해 이 문장은 꼽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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