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프롤로그
제주도를 여행 가고 싶기 위해서 한강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인지 책을 읽고 나서 제주도를 가고 싶었는지 모호해졌다. 닭이냐 달걀이냐 무엇이 먼저인지 시비를 따지는 것 같지만 옳고 그름은 상관없다. 중요한 건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제주도를 찾았다.
이번 여행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계획을 짰다. 제주에서 성산읍까지 동쪽으로 향하는 1박2일 코스다. 개인적인 일정과 휴무일 때문에 성산일출봉은 가지 못했다. 만약 나와 같은 1박2일 제주 동쪽 코스를 짠다면 이와 같은 순서를 추천한다.
제주 4.3 평화공원 - 성산읍 숙소 - 성산일출봉 - 다랑쉬오름
2.독후감
언젠가 인터넷 기사로부터 한강 작가가 프랑스 기메 문학상 수상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불어로 번역이되어 출간이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제주 4·3 이야기인 줄 몰랐다. 단지 유명한 작가의 영향력이 해외로 뻗치는 그런 영광스러운 일 중 하나를 보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사를 본 것은 아마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서였을 것이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사투리를 잘 표현 했다는 것이다. 제주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를 구어체 그대로 소설 속에 담으면서 현장감을 가미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때 그 느낌을 더 해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핵심이겠다 싶다. 간증을 듣기 위해 찾아간 기자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로 취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정제되지 않는 그들의 표현 그대로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사투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더불어 그들의 삶을 쉽게 공감할 수 없다. 그때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국가로 인하여서 한 번이라도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불안한 치안으로 집 밖을 나서기를 고민해 본 적 있는가? 그런 고민 속에서 자유로운 우리는 그 당시를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적나라한 구어체는 생경함을 선사함과 동시에 하나의 벽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장치였다.
그래도 책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며 짚어보고자 한다.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가 두 여자의 이야기로 전개가 되고 그 중 B는 제주도 출신이다. 그렇게 비제주도 출신인 A는 제주도의 참상을 알게 된다. 마치 무지한 우리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설명하기엔 부끄럽지만 사실 독후감을 본격적으로 적기에는 너무 빈약한 이해도다. 사실 책 속에 내용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다. 내게 <작별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제주 4·3 사건을 더 알고 싶다는 마음과 대만에도 그런 아픔이 있었고 오키나와에도 그런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게다가 경산 코발트 광산 사건을 알게 되었다. 이 한반도에 제주 4·3 만큼이나 응어리가 진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2년전 분단소설을 연달아 읽으면서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육이오전쟁의 의미는 단지 병역의 의무를 부여한 하나의 짜증 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봐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실임을 점점 느끼고 있다. 이데올로기 갈등에는 그저 민초와 양민들이 가장 많이 피해를 봤다. 증오는 증오를 낳았다. 화병은 치유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갔다. 그렇게 잊혀가는 사건들이 늘어나만 갔다. 국가가 내게 군복무를 요구하는 그 이면에는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들의 노력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태의 불만으로 세대갈등을 표적으로 삼은 나에게 분단소설은 역사 속 주인공이신 선배님들을 존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제주4.3평화공원
제주도에 도착하고 제주 4.3 평화공원에 가면서 가장 나를 먼저 반긴 것은 태극기였다. 4.3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제주도는 태극기를 봄에 게양하나 보다 싶었다. 단지 국경일에 태극기를 보았던 기억들과 다르게 벚꽃과 태극기를 함께 보니 신선한 풍경들이었다.
공공근로를 하시는 한 어르신이 먼저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사람들을 모았다. 아마도 그분은 관람 순서를 안내하는 듯했다. 10분 남짓 한 영상은 앞으로 기념관에서 보게 될 내용들을 축약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상물이라 그런지 쉽게 이해가 되었다. 기념관을 관람하는 순서로 가장 첫 번째로 영상 관람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느꼈다. 4.3을 알기 위한 시작점으로 들어가는 곳부터 동굴을 연상하고 있어 뜻에 맞게 잘 재연했다 생각이 들었다.
긴 통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물 위에 관하나가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면 빛이 원을 통해 들어오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건축적 어떠한 기법인가 싶기도 하지만 제주 4.3이나 한강 작가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장소가 우물이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참상이 일어났다는 끔찍함과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물 밑에 숨으면서 그들과 함께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체험적인 공간이었다.
쭉 기념관에서는 어떤 이유로 사건이 발생했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관람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커플들이 많이 보였다는 점과 오고 가며 일본인들이 이 장소에 찾아왔다는 것이 기억이 남는다. 경건한 장소에 어떻게 데이트 장소로 삼을 수 있냐 질책할 수 도있겠지만 오히려 칭찬해야 되는 거 아닐까? 그리고 일본인들이 한국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갈라 치기 하며 지역갈등을 조성했던 매스컴들의 악행처럼 어쩌면 우리도 일본인들에게 가까워지지 못하게 하는 어떠한 세력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었다.
제주 4.3을 양민학살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가 그해 3.1 총격사건으로 일이 더 커진 것인지는 몰랐다. 그리고 갈등이 첨예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학살당했는지도 몰랐다. 다 살펴보니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맞먹었다. 임산부를 죽인 것도 마찬가지 아이들을 무참히 죽인 것도 똑같았다. 이데올로기 갈등의 결과는 다들 이런 이미지일까?
4.다랑쉬굴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안에 다랑쉬굴을 재연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발굴당시 영상과 실제 공간을 재연한 유골들과 잔해들을 볼 수 있다. 책에서 나왔던 동굴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에 그런 동굴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루에 다 찾아가기란 벅찼다. 오히려 이런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제주도 전역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 아닌가. 살기 위해 동굴에 숨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 그런 두려움을 우리는 느껴보고 싶어도 느낄 수 없는 그런 감정이다.
다랑쉬굴은 중산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다랑쉬마을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당시 불타고 없어져서 터만 남아있다. 그 주변에는 무밭으로 무성하고 현재는 그곳을 성역화 사업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발견되고 나서 굴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 은폐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지금은 당연히 안전상과 보안상으로 막혀있지만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안에 재연한 것을 먼저 보았기에 이런 곳에 숨어 지냈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외진 곳까지 찾아와서 죽였나 싶으면 끔찍하다. 그렇게까지도 그들에게 반동분자가 나빴나 싶다.
4-1. 다랑쉬굴 찾아가는 법 (24.04.01 기준)
다랑쉬굴을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공사를 하고 있어서 조만간 좋아질 것 같지만 지금은 차도로 다랑쉬굴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10m 앞까지는 접근할 수 있다. 나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물론 거기까지도 편도 1차선 농로길이며 중간에 물이 고여있는 곳도 있고 멍석도 깔려있다. 좀 큰 차라면 주차공간까지는 가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카카오맵 로드뷰로도 볼 수 있다.
차가 걱정이 된다면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마을>을 찍고 도로가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진흙탕이 있음으로 신발 조심해야 한다.
5.다랑쉬오름
다랑쉬굴에서 보는 다랑쉬오름이다. 다랑쉬마을에서 좀 더 가면 다랑쉬오름 주차장이 있다. 다랑쉬오름도 꽤나 유명한 오름이라고 해서 올라가 봤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서 정상까지 왕복 45분 만에 갔다 왔지만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올라가기 편한 오름도 있다던데 말이다. 오름을 너무 얕봤다 그냥 언덕으로만 생각했는데 산이라고 생각했어야 했다.
10분 동안 심박수가 180을 유지하면서 산행을 했고 구조헬기를 불러볼까 육지로 가는 비행기 표를 다시 구할까 온갖 생각을 다했다. 정상 둘레길까지 와서 좀 쉬니까 괜찮아졌다. 쉬고 보니 눈앞에는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씨라 아쉬운 가시거리지만 그래도 잘 올라왔다 싶다.
오름에서 성산일출봉과 한라산을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오름들이 여기저기 펼쳐진 것 또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 감격스러웠다. 갑자기 우리나라가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다랑쉬오름 정상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여러 오름들을 살펴보니 문득 월남전 때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폭격기에 의한 크리에이터가 생각이 났다. 제주도도 마찬가지로 미군의 폭격이 이루어졌던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독서와 무관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자연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낀 동시에 폭격세례를 바라보면 이런 모습일까 느껴보는 다랑쉬오름 정상이었다.
5.에필로그
몇 달 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가졌다. 독서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이후 내게는 과연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게 되었다. 결론은 여행은 독서의 마침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의 이유가 된다. 2년 전 여름 독서모임에서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고 그가 이야기하는 도다리쑥국을 먹어보고 싶어서 곧 장 통영을 갔다. 하지만 이미 봄은 다 지나고 여름이 되어가고 있는 판국에 도다리쑥국은 없었다. 괜히 도시촌놈 취급만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 여행이 오래 기억이 남고 더불어 시인과 시집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내게 여행은 마침표다. 그게 독서로 시작되었던 그 어떤 것으로 시작되었던 직접 가보며 견문을 넓혀보는 것 그리고 촉수를 세워 그곳을 느껴보는 것 그것이 내 이유가 되겠다.
'소소한 책방 >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긍정 심리학으로 행복해지는 길 『탈 벤 샤하르 - 행복이란 무엇인가』 (0) | 2024.05.13 |
---|---|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불안에 대한 고찰 알랭 드 보통 <<불안>> (0) | 2024.04.23 |
한국전쟁 속 아픔을 살펴보는 <<노근리, 그 해 여름>><<노근리 그 후>> (3) | 2024.04.21 |
[독후감] 이소연의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3) | 2024.04.02 |
[독후감] 가와우치 아리오의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2) | 2024.03.06 |
[독후감]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 | 2024.02.17 |
[독후감]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4) | 2024.01.24 |
[독후감]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9) | 2024.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