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기 전 제목에 대한 감상
싱아? 도대체 싱아가 뭘까? 당최 알 수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생경했다. 싱아가 뭐길래 많이 있었을까? 동물이나 식물일까?
![](https://blog.kakaocdn.net/dn/bSW7e4/btrQPkf43VZ/lLTbzMI3CPbTpUkp7S4vsK/img.jpg)
2. 독후감
마당 깊은 집을 읽고 분단문학에 대해서 이미 깊게 생각해봤다. 복잡했던 머리 속이 약간의 소강 상태에 이른 것이다. 분단문학에 대한 감상도 어느 정도 소진되었다. 이 상황 속에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이 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하 싱아로 생략. 그리고 <마당 깊은 집>은 마당으로 생략하겠습니다. 마당은 육이오 분단이후에 민초들의 삶을 다루었다. 싱아는 마당보다 그 스펙트럼이 넓다. 일제강점기 후기부터 우리들의 삶을 그려냈다. 그리고 싱아는 1.4후퇴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다 읽고 나서 알았지만 싱아의 후속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도 있다. 아마 싱아를 읽다보면 궁금해서 후속작을 안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마당을 읽으면서 분단문학에 대해 집중하고 고취되었었다. 반면에 싱아는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긴박한 느낌은 없었다. 일제치하라고 하더라도 민간인들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했다. 소설 속에서 긴박함이 없었다. 물론 중간에 창씨개명의 위기와 같은 한국사 교재에도 나올법한 사건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싱아에서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할아버지의 근지 때문이었다. 역사 책과 달랐다. 책 본문에도 나와 있듯 개인적인 자존이었을 뿐 민족적이지 않았다. 즉 주인공의 엄마는 창씨개명 안한 자식을 걱정 할 뿐이였다. 멀리서 보면 굵직 굵직한 사건들도 가까이서 보면 한 낱 사소한것들 투성이다. 독립을 맞이 한 때에도 의용군으로 잡혀간 그 때에도 모두 하나의 이야기거리일뿐이었다.
독립과 육이오를 거쳐가며 그저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는 사람들이 안쓰러웠다. 주인공네 집안이 그랬다.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서 집도 사고 사대문 안으로 이사도 가고 했다. 하지만 세상이 급변할 때에 그들이 노력들이 산산조각 나곤 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해방 이후 동네 젊은이들이 떼거지로 양반인 할아버지의 집을 부수러 올 때 였다. 소설에서는 그 현상을 점잖게 잘 설명하고 있지만 좀 무서웠다. 그 때 당시로 돌아가서 내가 생활한다면 맛잇는것도 안 먹고 최대한 근검절약해서 자산을 키워갔을텐데 말이다. 베짱이처럼이 아닌 개미처럼 살다가 나중에 해방되고 육이오가 터지면서 다 몰수당하면 결국 왜 나는 열심히 살았던 것인가.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정의란 무엇인가>의 작가 마이클 샌델의 최근작인 <공정하다는 착각>이 생각이 났다. 미국사회에서 어떤 백인 한 사람이 흑인 한 명에게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질타한다면 이게 합당하고 올바른 것인가? 이렇게 비교하면 우리는 잘 교육 받아서 인지몰라도 반감이 들 것이다.
하마터면 나도 그럴 뻔 했다. 일제치하에서 양반신분으로 개인적인 노력으로 자산을 키우고 사회적 위치를 키우는 것은 어쩌면 반민족적일 수 있다. 독립운동하다가 자금이 부족해서 집과 토지를 싸게 판 것을 사다가 자산을 늘리고 총독부의 요직에 앉아서 정보를 얻어 땅을 사서 자산을 불리는 것. 나는 이런 것들이 소극적인 친일이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그 당시 한 여자가 학교를 온전히 다니고 서울대에 진학하는 것이 과연 한 낱 개인의 노력들로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고 모두 다 친일파라고 치부하고 싶지 않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나의 행동들이 친일이고 반민족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일제치하에 육이오전쟁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력하지 않는 자들이 혼란을 틈타 가진자들의 것들을 빼았는 것이 혐오스러웠다. 본문에서는 억압에 대한 표현이라 잘 표현했다. 정말 가진자들이 가지지 못 한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할 때 그 자산을 지키려는 것 보다 그들의 심정을 공감하로 곳간을 열어주는 것이 참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집이 망가질 때 가만히 있는 것 처럼. 그렇지만 너무나 지극히 이상적이다.
너무 급발진이었나 싶지만 다행이라 생각한다. 지금 현재의 나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좋은 집에 살고 이런 것이 비단 개인의 노력이라고만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오만에 빠질 뻔 했다. 중구난방인 독후감이지만 감사함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3. 인상깊은 구절
숙부의 편지는 내가 왜 사형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변호사라도 대서 나를 좀 살려 달라는 거였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독후감을 쓰고 나니 그저 불쌍하기만 한 숙부가 한 편으로는 당연하다고도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기에 기업을 키워나가고 자산이 많았던 그가 해방이 된 후에 북한이 점령한 서울에서 온전할수있었을까? 싶다. 단지 남한에서는 숙부의 행보를 자유의 큰틀로 묵인하고 용인해준것일뿐이다. 이념갈등이라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배워도 공부해도 갈등이고 배우지 않아도 갈등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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