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2022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정소현-그때 그 마음)

1. 읽기 전 제목에 대한 감상


표지 좌측 상단에 정소현 작가라고 추정되는 여자의 사진이 있다. 그 인물사진이 어쩜 그리도 제목과 잘 어울리는지 감탄했다. 지긋이 과거를 회상하는 그녀의 모습 그리고 흑백사진이 제목의 뜻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그때 그 마음. 현재와는 다른 그때 어느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 또한 매년 생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껴서 그런지 공감이 됐다. 똑같은 나는 없고 어떻게든 매년 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야기는 그때의 시점은 어느 시점일까 궁금해졌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것인지 청춘을 떠올리는 것인지.

표지에 설명되는 수상 후보작에 김멜라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작년 젊은작가 수상작에서 본 것 같은데 반가웠다. 이제 나도 점점 알아보는 작가가 있다는 것에 기뻤다.


2. 독후감


혜성의 폐쇄성을 깨뜨린 것은 23년 만에 연락이 온 순정 덕분이었다. 혜성은 불현듯 찾아온 순정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23년 동안 혜성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IMF와 화재사고로 가족을 다 잃고 혜성은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했다.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폐지를 주우며 연명하듯 살아갔다. 그녀는 욕심 없는 삶을 추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설정한 일상을 지켜야 했다. 자칫 일상을 벗어나게 되면 이상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이 작으면 멋진 가구를 사고 싶은 욕구도 없고 집에 식기가 없으면 요리하고 싶은 욕구도 없다. 그렇게 혜성은 본인의 욕구를 죽이고 자기 자신을 버렸다.

순정이 혜성에게 연락한 이유는 23년 전 대학생 때 어학원에 친하게 지낸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실로 막역한 사이었다. 순정에게는 혜성이 유일하게 그녀를 억압하는 그녀의 가족들을 그녀 대신 욕해주는 사람이었다. IMF가 터지고 다들 가세가 기울 때 순정은 하는 수 없이 취직을 해야 했고 멕시코로 떠났다. 떠나는 그녀에게 혜성은 거기서도 가족들에게 메여있으면 앞으로 보지 않겠다 엄포를 놓았다. 순정은 멕시코에서도 가족들 곁을 떠나지 못했고 그렇게 혜성의 조건에 충족되었다. 만나지 못하면 마음이 떠나는 것처럼 순정과 혜정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다가 끊어졌다. 귀국을 한 순정 입장에서는 23년의 시간차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혜정에게 연락을 한 것이지 않을까?

순정은 오히려 귀국하고 나서 가족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다. 가족은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이 떠나는 것은 아닌가 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관용표현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제껏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한 순정은 돈을 다 써버리겠다 결심했고 가장 쓸모없고 아름다운 것을 가질 것이라 했다. 그런 말을 한 순정은 어쩌면 멕시코에 있으면서도 본인을 위한 소비는 하지 못 했을 것 같다. 순정은 쓸모없고 아름다운 것을 찾기 위해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보러 다녔다. 당연히 혜성은 순정과 동행했다.

그 동행길에 혜성은 "그때 그 마음"이라는 작품을 보았다. 그림은 마치 혜성이 살 던 집과 같았다. 아니 살 던 집이었다. 혜성은 불타버린 그녀의 집을 한동한 잊고 살았다. 혜성이 마음속 음침한 골짜기에 빠진 트리거는 화재였다. 그 뒤부터 그녀는 연인과 헤어지게 되고 결핍으로 남성편력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인연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그녀는 점점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혜성이 그 트리거 요인을 그림으로 다시 재회를 하게 되었다. 그때 상처가 무뎌졌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그 그림을 보고 가족을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혜성은 순정과 다르게 비교적으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었다. IMF 이후 아버지가 집을 나가시고 어머니가 다단계에 빠지고 남동생이 돌봄을 못 받을 상황인데도 혜성은 그녀의 꿈을 찾아 집을 나갔다. 오히려 화재로 온 가족을 잃고 죄책감을 안게 된 혜성이었지만 말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그 죄책감이 가족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혜성은 생각하는 것 같다.

혜성은 그 그림을 사고 싶어졌다. 혜성은 그 그림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다. 혜성의 일상을 비추어 볼 때 그 욕구는 과한 것이었다. 집도 작아서 그림을 둘 수 없고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구매력도 없다. 그렇지만 혜성은 그 그림을 사고 싶었다. 혜성의 욕구가 회복되면서 혜성이 지켜왔던 일상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 그림의 작가를 알아보기 위해 2시간 동안 도서관에 있었으며 그로 인해 폐지 줍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벌이도 줄게 되었다. 혜성은 그 그림을 가질 수 없는 이유를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따졌다. 하지만 비논리적으로 그 이유들은 오히려 더 사야 되는 이유로 바뀌게 되었다.

한 블로그를 통해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이 잠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혜성은 매일 도서관을 찾으며 잠자의 블로그의 게시글을 정독했다. 덧글도 달았다. 잠자의 회신은 줄 곧 없었지만 혜성은 줄기차게 그에게 글을 썻다. 혜성은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혜성은 잠자의 게시글 중 "그때 그 마음" 작품 해설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혜성의 어렸을 적 모습이 설명되어있었다. 혜성과 잠자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겠지만 잠자는 혜성을 뒤쫓으며 좋아했다 말했다. 그 글을 본 이후로부터 혜성은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줬다 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의 감정을 회복하게 되었다. 잠자를 만날 수 있는 강연이 열린다고 해서 혜성은 그 강연을 찾아갔지만 결국 잠자는 가상 인물이었고 작가는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혜성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서로 다른 성격과 삶을 살아온 혜성과 순정은 재회를 통해 그들의 삶 속에 내재되어있는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하게 되었다. 순정은 가족들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기의 마침표를 찍으며 본인의 삶을 주도하게 되었고 매정해 보였던 혜성은 오히려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욕구를 회복하게 되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도 되찾게 되었다. 잠자는 가짜였지만 말이다. 23년 동안 만나지 않는 그들이 만남으로써 회복하게 되는 좋은 효과를 보았다. 어쩌면 그들이 이제껏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지만 학창 시절에 친하게 지내고 허물없이 지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무엇을 회복할 수 있을까? 혜성과 순정이 둘 다 윈윈이었던 것처럼 나 또한 윈윈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회복을 가질 수 있을까 새로운 기대를 해보게 된다.

3. 인상깊은 구절


혜성의 이런 사고방식이 공감이 갔다. 나도 혜성처럼 사회성이 잃어버린 거지 않을까?


외로움이 돌아온 것은 좋은 징조다. 외면하지 말고 직면해서 탈출해보자. 혜성이 마음 속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지기 전에 만났던 사람 순정을 다시 만나 그 전으로 돌아갈수있길 바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