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1. 읽기 전 제목에 대한 생각

1)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라는 말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상대에게 말하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먼 곳에서 이민 온 자들이 어떤 나라에 도착하고 자기네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출신을 밝히는 것처럼. 하지만 제목 뒤에 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여운이 느껴졌다. 감히 상상해보자면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그러니까 안심해"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출신을 밝히는 것이 어떨 때는 불리할 수도 있는데 밝히는 것 보면 페퍼로니라는 곳은 좋은 곳이지 않을까 싶었다. 도대체 어디를 갔길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라는 말을 한 걸까?

2)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온전히 있어야 할 것이 빈칸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도 주어는 채워져 있음에 안심은 된다. 우리라고 표현했으니 우리 모두의 문제이지 않을까? 우리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누구나 경험하고 경험할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끔 하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3) 실버들의 천만사


실버, 다른 표현보다 직관적으로 떠오른 것은 노인이었다. 흔히 실버타운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노인이 떠올랐다. 천만사, 한자성어 인 줄로만 알았다. 일상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울산에 있는 절이 나왔다. 노인들의 절간? 새로운 형태의 실버타운이 되는 건가? 불교를 소재로 한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 2017년 이상문학상 대상인 풍경소리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제목의 실버가 내가 예상한 실버가 맞는다면 기쁠 것 같다.

4)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애초에 바다와 캥거루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인가? 의심하게 된다. 바닷가에도 캥거루가 있으려나? 호주를 가본 경험이 있는 나는 캥거루가 바닷가에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호주 땅은 넓고도 넓어서 없다고 확신할 수 도 없었다. 낙원의 밤이라 하니 휴양지의 밤이라 생각이 든다. 바다와 함께한 캥거루가 있는 낙원은 어떨까?

5) 내게 내가 나일 그때


1인칭이 세 번이나 나온다. 일부러 음율 때문에 의도적으로 한 것 같다. 각각 두 음절로 끊었으니 더 의심스럽다. 이해하기 쉽게 <나한테 내가 나 다울 그때> 이렇게 풀어 써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제목의 의미는 "아까 그 행동은 내가 봐도 나다운 행동이었어, 그렇지 않아?"라고 누군가에게 말할 것 같은 말 같다.

6) 들소


진짜 들소가 소설에 나올지, 들소 같은 사람이 나올지 만약 후자라면 들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뭐 길래 사람에 비유해서 들소라 했을까? 그런데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게 내가 언제 들소를 본 적이 있던가? 외갓집에 외양간이 있었는데 외양간 안 소만 본 적이 있지 들소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왠지 들소는 어떤 소보다도 드셀 것 같다.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 마냥

2. 독후감


짧은 소설의 장점은 문장의 호흡이 길고 짧고 관계없이 책 읽는데 피로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바라볼 때 어떤 수상작품이라도 그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50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짧은 소설이라도 작가의 메시지를 품고 있기에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속단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소설은 분량에 비례해 그 메시지는 더 간단해지거나 더 집약되는 약간의 극단성을 띄게 된다. 책을 읽기 전 제목에 대해 감상하는 일종의 책 읽기 루틴은 앞서 언급했던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그 습관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편협적이게 작용하기도 했다. 미리 생각했던 것들로만 소설을 이해하려고 하면 작가가 아무리 상상력을 제공하고 이야기에 개연성을 허락하더라도 그 도움에 빛 발하지 않고 그 빛을 제한하려고만 한다. 그렇게 되면 작가의 메시지에 가까워지기보다 삼천포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게 독후감으로 발전된다면 메시지와 무관한 본인의 2차 창작물이 되어버린다.

편협적일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제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재밌는 독서 활동 중 하나이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읽고 정말 페퍼로니 피자임을 알게 되고 특이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제목이 본문에 등장한 것이 되게 반가웠다. 오히려 <실버들 천만사>는 도움 되는 제목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용은 모녀간의 사랑 회복이겠지만 그것이 실버와 천만사와는 무슨 관련인가?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에서는 밤 빼고 키워드가 본문에 다 나왔다.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시원이 김이 있는 브리즈번에 가고 싶어 하면서 왜 시드니 공항에서 김을 만나는가? 따지고 보면 브리즈번은 퀀즈랜드 주이고 시드니는 뉴사우스웨일 주인데 말이다. 일부러 시원과 함께 시드니 투어를 하기 위해 그곳으로 부른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오류인 건지 의심이 들었다. 당연히 전자일 거라 생각하지만 찝찝한 마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6개의 작품 중 제목에 가장 충실한 작품은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였다. 민영은 마이크의 감정 기복에 상처 받고 타인의 친절에 혼란스러워할 때 승아는 제목 그대로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하라고 조언 해준다. 이 소설이 이로써 시작과 끝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제목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일상 속에서 특정한 인물들을 설정하고 그 인물들과 독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게 승아는 작가를 대신해서 메시지를 던졌다. 에두르지 않고 직관적으로. 승아의 조언은 민영에게만 도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승아와 민영을 아는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분명한 건 승아의 조언은 스트레스 처리 프로세스 속에서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짧고 경제적이고 논리적인 단 몇 줄의 코딩인 셈이다.

6개의 작품을 단숨에 읽은 것이 작품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집중하는데 도움되지 않았다. 소설의 배치 순서대로 집중력은 점점 흐릿해졌다. 아마 제일 기억나지 않는 작품은 <들소> 일 것이다. 지금 다시 한번 읽어 봐야 주인공의 성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억나지 않는다. 작품 하나를 감상하는 것보다 6개의 작품 중 마지막을 곧 마무리하겠다는 조바심이 잘못이었다. 6개의 모든 작품 다 뜯어보면 이야기할 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수상작품집 안에 속해 있어서 그런지 그런 마음이 덜 했다. 그런 것 보다도 김승옥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가장 크게 남았다. <무진기행>의 작가였다니 그리고 작가의 고향이 순천이라니 이 두 가지 사실이 흥미를 불러왔다. 6개의 작품들이 준 감상이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진기행을> 다시 읽어보고 싶고 김승옥 작가에 대해서 알고 싶어 졌다. 그것만으로 이 번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제 몫을 다 했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