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한강의 채식주의자

[아래 글은 2020년 12월 23일에 작성하고 독서모임에서 나눈 독후감입니다.]
[이 독후감은 2020 제 1회 ㄱㅇ독서모임 문집에 실었습니다.]
[사실 1/3만 읽었습니다]

1. 읽기전 감상 (출판사에 관하여)

 

책 제목인 채식주의자에는 눈길은 가지 않고 책 표지의 좌측 하단에 창비라는 글씨가 유독 눈에 띄었다. 창비, 창작과 비평의 줄임말이고 출판사 이름이다. 창비하면 떠오르는 책은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 라는 책이다. 그리고 하나 더 고등학교 문학교과서도 떠올랐다. 고1 부터 7차 교육과정이 개정이 되면서 바로 위 2학년 선배들과 다른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국어수업은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검정교과서로 바뀌게 되었고 국사도 한국사라고 이름이 바뀌고 이 또한 검정교과서로 바뀌게 되었다. 장단점이 있겟지만 덕분에 창비에서 나온 교과서로 문학을 공부 할 수 있었고 교과서 안에서 창비에서 출간한 많은 작품들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2. 독후감

 

동물권에 대한 생각은 몇년전 구제역 살처분 영상을 보고 시작이 되었다. 산자락에서 몰래 살처분현장을 촬영하는 기자들은 흐느껴우는 돼지들의 신음을 듣고 동요됐다. 그리고 곧 기자들도 돼지들과 함께 울게 되었다. 그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 나는 기자들이 느낀 감정을 공감 할 수 있었다. 한동안은 삽겹살을 먹지 못하였다.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슥거렸고 그 영상 속에 신음하는 돼지들이 생각이 났다. 결국 의지박약으로 그 한동안은 일주일 정도를 의미했다.


이 후 동물권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 관심은 PETA라는 단체를 찾고 그 단체의 영상물을 보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PETA에서는 경주마,루왁커피,남미의 소들,실험용 원숭이들,모피를 얻기위한 토끼들 가감없이 혐오스러울수 있는 진실을 알리는 영상들을 많이 보여줬다. 나는 꽤나 PETA에 감동했고 그리고 현재 내 방에는 PETA로고가 찍혀진 반팔티셔츠 4개가 있다. 안타갑게도 그 티셔츠들은 잠옷으로 전락했지만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나름대로 나도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덕적 우월감으로 설명할수도 있겟다 싶다. 당연히 채식주의자가 되고싶은 생각과 노력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기루처럼 지나갔다. 엄격한 비건은 어려웠다. 그리고 비건 아래 에 있는 많은 선택적인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생각 또한 마땅치 않아 했다. 물고기는 먹어도 되는 채식주의자, 닭고기만 먹는 채식주의자 등등 내겐 다 이상해 보였다. 물론 지금은 단번에 비건으로 거듭나기 어려우니 그 단계는 성장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체질을 위해서 채식이 좋다는 건 알고 최근 3개월 간 채식위주의 식단으로 점심을 먹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 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며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고양이의 사료에는 연어,닭고기,칠면조 성분이 들어간 제품들이 많다.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라 생각하면 당연할 법하다. 고양이과인 사자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지 않은가. 난 인간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고양이 처럼육식동물은 아니고 잡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축들은 그래도 우리의 중요한 먹거리다. PETA에서 보여주는 비인간적으로 도축하는 것을 보면 옳지 않다고 생각할수있지만 그의 해답이 채식주의를 선택하는 것 뿐일까? 그 해답은 너무 극단적이라는 나의 생각이다.


고교 시절 우유를 먹지 않는 선생님이 기억이 난다. 그는 급식도 신청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오셨다. 그 선생님이 우유를 먹지 않음과 도시락을 싸오시는 것은 동물권에 대한 의식 때문이였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모습이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조롱을 하였다. 다름에 대한 존중이 없었던 우리는 그가 우숩게 보였고 조롱했다. 그의 신념은 진지했지만 그 신념을 설명하는데는 미숙했다 그는 "우유를 먹으면 소가 뒷발로 걷어 차는 것 처럼 우리도 그렇게 난폭해진다"라고 앞뒷말 다 짜르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야기 하니 우숩게 보였을거다.


채식주의자가 된 여자도 마찬가지로 어느날 부터 시작된 꿈 때문이였다. 계속 된 꿈에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며 완벽한 비건이 되었다. 고교시절 선생님 처럼 그녀가 그녀의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채식의 시작이 꿈 때문이었을까? 이 때문에 남편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그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 전과 같은 모습을 원했을 뿐이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중에 가장 내 마음 속 깊이 남은 것은 남편의 태도였다. 여자가 그리고 아내가 채식하는 것에 심취해 있고 심하게 표현하면 집착하고 있으면 몇달 아니 몇 주 동안 만이라도 채식하는 것에 동참해 줄 수 없는 것일까? 남편은 아내가 왜 채식에 집착하게 되었을까?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여자가 극단적인 채식을 한 이유가 여럿 있겟지만 그 중 남편 또한 큰 몫을 했을거라 본다.


맨부커상을 받은 이 책은 독자들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어 할까? 우리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삶의 방식 채식주의자? 정녕 이 메시지였다면 시시하고 진부하다. 극단적인 요소로 자극적이게 채식주의자를 묘사하면서 시사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봐야 할 것 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반면교사 하는거지 않을까 싶다. 여자를 못 마땅해하는 가족들 또는 사람들은 여자에게 무례했고 폭력적이였다. 남편이 그랬고 여자의 아버지도 몰래 한약을 먹인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선의로 그런 행동을 했다 하지만 여자는 강하고 정확하게 말했다. "저는 먹지 않아요" 그리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럼 그녀를 위해서인 선의의 행동은 어떤 행동으로 비춰져야 할까?